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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210
한자 宋光迪
영어음역 Song Gwangjeok
이칭/별칭 도경(道卿)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금강로124번길 23-17[온천동 135-26]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변광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생
성별
본관 여산
출생 시기/일시 1690년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744년 - 동래향교 대성전 상량문 기록
활동 시기/일시 1766년 - 온정 개건비의 비문을 씀
몰년 시기/일시 1775년연표보기 - 사망
출생지 동래부 - 부산광역시
사당|배향지 세덕사 - 부산광역시 금정구 회동동 동대 마을

[정의]

조선 후기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에 있는 온정 개건비(溫井改建碑)의 비문을 쓴 동래 출신의 유생.

[가계]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도경(道卿). 수양 대군(首陽大君)이 계유정난[1453]을 일으켜 조카 단종(端宗)을 쫓아내고 왕위를 빼앗자 동래로 입향한 동주(東洲) 송극명(宋克明)의 10세손이다. 아버지는 송규회(宋奎會)이고, 동생은 송광제(宋光濟)송광순(宋光洵)이다. 부인은 정부인 창원 황씨(昌原黃氏)이고, 자녀는 2남 3녀를 두었다.

동래의 여산 송씨(礪山宋氏)는 원윤공파(元尹公派)의 후손으로, 입향조의 호를 따서 동주공파(東洲公派)로도 불린다. 입향한 지 500년이 넘은 부산의 대표적인 토성(土姓)으로, 부산 지역에 많은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활동 사항]

송광적(宋光迪)[1690~1775]은 77세 때인 1766년(영조 42) 동래의 온정 개건비(溫井改建碑) 비문을 썼다. 온정 개건비는 동래 부사 강필리(姜必履)가 온정(溫井)의 욕탕을 크게 고쳐서 넓힌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뛰어난 필력을 자랑하였던 송광적의 단아하고 부드러운 글씨체가 돋보인다.

송광적은 동래의 대표적인 향반(鄕班)으로서 1744년(영조 20) 동래향교의 대성전을 이전할 때 상량문을 기록하는 등 이건·중수와 관련하여 여러 기록을 남겼다. 또한 동래의 각 관청에서 활동하는 향리(鄕吏)[대를 이어 관청의 실무를 담당하였던 구실아치]의 역할과 향촌의 규약 문제, 양반 및 향리의 소임, 장교의 교체 등에 관한 규정 및 조항을 만드는 등 지역 사회의 일에 깊이 간여하였다. 그 공로로 절충장군(折衝將軍) 품계를 받았고, 85세에 가선대부(嘉善大夫)로 품계가 올랐다.

[학문과 저술]

임진왜란의 참상을 적은 『임진 충렬지(壬辰忠烈誌)』를 읽고는 원통하고 슬픈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시로 읊었다고 한다. 일본을 겨냥하여 바다를 끼고 있는 전성(羶腥)[달갑지 않은 존재]에 비유하면서, 변방 동래 고을과 사직(社稷)을 걱정하는 비장한 내용이다. 『여산 송씨 원윤공파보』 권1에 적힌 한시 원문은 다음과 같다.

방수인설임진령(邦讐忍說壬辰齡

감체변성대수령(感涕邊城大樹零)

용어원천위사직(龍馭遠遷危社稷)

원충진화참생령(猿虫盡化慘生靈)

횡남자기순삼야(橫南紫氣旬三夜)

배북단충두일성(拜北丹衷斗一星)

격검비가증강개(擊劒悲歌增慷慨)

불감환해주전성(不堪環海住羶腥)

[묘소]

『여산 송씨 원윤공파보』에 의하면 송광적의 묘는 동래부 북쪽 국보산(國寶山)에 있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부산광역시 금정구 회동동 동대 마을에 있는 여산 송씨 동주공파의 사당인 세덕사(世德祠)에서 배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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