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9417 |
---|---|
영어의미역 | Jeolgol Village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사상구 모라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전영섭 |
성격 | 자연 마을 |
---|---|
변천 시기/일시 | 1914년 - 동래군 사상면 모라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63년 - 동래군 사상면 모라리에서 부산직할시 부산진구 사상출장소 모라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75년 - 부산직할시 부산진구 사상출장소 모라동에서 부산직할시 북부출장소 모라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78년 - 부산직할시 북부출장소 모라동에서 부산직할시 북구 모라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95년 - 부산직할시 북구 모라동에서 부산광역시 사상구 모라동으로 개편 |
자연 마을 | 절골 마을 - 부산광역시 사상구 모라동 |
[정의]
부산광역시 사상구 모라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
[명칭 유래]
운수사(雲水寺)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절골[寺谷]이라고 붙여졌다.
[형성 및 변천]
절골 마을 인근에 운수사가 있는데, 사찰의 창건 연대가 가락국 또는 신라 법흥왕 대이므로 절골 마을의 형성 시기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오랜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으로 동래군 사상면 모라리가 되었다. 일제 말기 중석(重石) 광산이 개발되어 광복 후 1950년대 말까지 광산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다. 1950년에는 운수산에서 생산되었던 구들돌을 캐내는 사람들이 산막처럼 집을 짓고 살기도 하였다. 6·25 전쟁 때 부산 사상 지역에 주둔한 미군 부대의 중장비로 이 지역에 도로를 닦아 차량이 오르내렸다. 이로 인해 1950년대에 운수사 부도탑이 있는 산속 깊은 곳까지 차도가 개설될 수 있었다.
1963년 부산직할시가 되면서 부산직할시 부산진구 사상출장소 모라동이 되었다. 1975년 부산진구의 사상출장소와 구포출장소가 통합되어 시 직할 북부출장소가 설치됨에 따라 부산직할시 북부출장소 모라동이 되었다. 1978년 부산직할시 북구 모라동이 되었다. 1991년 인구 증가로 모라동을 행정적으로 모라 1동과 모라 2동으로 분동하고, 1994년에는 모라 2동을 모라 2동과 모라 3동으로 분동하였다. 1995년 부산광역시로 승격됨에 따라 북구에서 분리되어 부산광역시 사상구 모라동이 되었다.
[자연 환경]
절골 마을의 서쪽으로는 멀리 낙동강이 흐르고, 동쪽, 남쪽, 북쪽은 백양산(白楊山)으로 둘러싸여 있다.
[현황]
절골 마을은 사상구 모라 3동의 자연 마을로 지금의 운수사 진입로 쪽에 있었다. 현재는 모라 주공 아파트와 모동중학교, 모동초등학교 등이 들어서 있으며, 백양 대로와 백양 터널이 지나고 있다. 절골 마을 입구 동네인 모라 주공 아파트 단지 위쪽에 김녕 김씨(金寧金氏) 유두 문중(柳頭門中)의 재실인 유헌재(柳軒齋)가 있으며, 유헌재 동쪽 언덕 위에는 조선 시대 유도(柳島)에 제방을 쌓아 홍수의 피해를 줄였던 김준옥(金峻玉)[1610~?]의 묘소와 묘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