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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9193
영어의미역 Uitmaeul Village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사상구 모라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전영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자연 마을
변천 시기/일시 1914년 - 동래군 사상면 모라리에 속함
변천 시기/일시 1963년 - 부산직할시 부산진구 사상출장소 모라동에 속함
변천 시기/일시 1978년 - 부산직할시 북구 모라동에 속함
변천 시기/일시 1995년 - 부산직할시 북구 모라동에서 부산광역시 사상구 모라동으로 편입
자연 마을 윗마을 - 부산광역시 사상구 모라동

[정의]

부산광역시 사상구 모라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

[명칭 유래]

경부선 철로가 마을을 가로지르면서 철로 아래 운수천의 동북쪽에 있는 마을을 윗마을이라고 하였다. 윗각단, 또는 동리(東里) 마을이라고도 한다.

[형성 및 변천]

사상구 모라동의 고지대 쪽에 있던 고동 바윗골 일대에 일찍이 사람이 살았던 흔적으로 모라 조개더미가 있다. 이곳은 예로부터 바다와 하천을 낀 야산 지대로, 물길이 닿는 곳에 마을을 이루며 살아왔던 모라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선사 시대 고기와 조개를 잡아먹고 동물 사냥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였던 채집 경제생활의 최적지였던 것이다. 모라 조개더미는 삼한 시대에 속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아주 이른 가락국 시대 또는 신라 법흥왕 때 창건[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가 1660년 증수됨]된 운수사를 통해서도 마을의 역사를 알 수 있다. 윗마을에 대한 기록은 나타나지 않지만, 조선 시대에 동래군 사천면 상단 모라리에 속하였다.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으로 동래군 사상면 모라리가 되었다. 1963년 부산직할시가 되며 부산진구 사상출장소 모라동이 되었다가, 1975년 부산진구의 구포출장소와 통합하여 시 직할 북부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78년 북구 모라동이 되었으며, 1991년 인구 증가로 모라동모라 1·2동으로 분동하였고, 1994에는 모라 2동모라 2·3동으로 나누었다. 1995년 부산광역시가 되며 북구에서 분리되어 사상구 모라동이 되었고, 2008년 모라 1·2동모라 1동으로 통합하였다.

[자연 환경]

윗마을 동쪽으로는 백양산[운수산이라고도 함]에서 이어지는 산줄기가 있으며, 서쪽으로는 낙동강 사상 공단 유수로에 접해 있고 저지대에 시가지가 발달하였다. 동쪽 백양산에서 발원한 운수천은 서쪽의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모라에서 구포까지 뻗어 있는 범방산(泛舫山)의 미맥(尾脈)이 뻗은 곳을 풍수지리상 용동골 또는 용두골[龍頭谷]이라고 하여 명당자리로 보고 있다. 이 골짜기 강 쪽으로 뻗어 내린 곳에 고동 바윗골이 있다. 이곳에는 바위 밑에서 맑은 샘물이 솟아났는데, 거기에 산(山) 고동[螺, 고둥]이 살고 있어 고동 바윗골이라 하였다. 옛날 마을 사람들이 이곳을 신성시하여 제를 올렸다고 한다. 산 고동이 신성시되는 예는 특히 해변 가까운 지역에서 널리 볼 수 있는 일이다.

[현황]

윗마을사상구 모라동에 있던 자연 마을로, 남쪽으로 절골 마을과 인접해 있었다. 현재의 신모라 교차로를 중심으로 동북쪽에 형성되었던 마을이다. 지금은 이곳에 고동 바위 공원이 있어 옛 마을의 흔적을 알 수 있다. 지금은 도시화가 되어 부산은행 모라지점, 우성 아파트 등 주택지로 개발되어 있다.

윗마을 동쪽에 운수사가 있다. 운수사 창건에 대해 전하는 전설로는 “절의 경내에 있는 약수터에서 안개가 피어올라 구름이 되는 것을 보고, 이곳에 절터를 잡아 운수사”라 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운수사에는 맛 좋은 물이 나오며, 원래 처음 절 이름이 신수암이라 한 것도 물과 관련된 이름이라고 전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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