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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례동 경주 최씨 세거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7442
한자 周禮洞慶州崔氏世居地
영어의미역 Residential place of Gyeongju Choi clan in Jurye-dong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사상구 주례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전영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거지
개설 시기/일시 1615년 - 경기도 양주에서 살다 사화(士禍)를 피해 경주에 머물렀다가 주례동으로 입향
세거지 주례동 경주 최씨 세거지 - 부산광역시 사상구 주례동

[정의]

부산광역시 사상구 주례동에 있는 경주 최씨 세거지.

[개설]

주례동은 조선 시대에는 주례리(周禮里)로, 『동래부지(東萊府志)』[1740]에 사천면 상단 관내에 위치하며, 관문에서 21리 떨어져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1904년 발간된 『경상남도 동래부 가호안』에는 주례동에 총 61가구가 있었는데, 이 중 경주 최씨 6가구가 거주한 것으로 확인된다. 주례동 경주 최씨 입향조는 최이생(崔利生)으로, 인근 괘내리 마을 거주 경주 최씨가 무임직(武任職)을 맡았던 것으로 보아 이들 역시 무임직에 종사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명칭 유래]

주례라는 명칭의 유래는 정확하지 않다. 『주례(周禮)』라는 중국 책에서 유래하였다는 설, 우리말 ‘두리’에서 왔다는 설 등이 있지만, 농촌에서 농사일을 공동으로 하려고 리(里)나 마을 단위로 조직되었던 ‘두레’에서 유래하였다고 보는 설이 유력하다.

[형성 및 변천]

입향조의 묘갈명과 가승(家乘)에 의하면, 최이생은 경기도 양주에서 살다가 사화(士禍)를 피해 경주에 머물렀고, 1615년(광해군 7) 나이 33세 때 주례동으로 입향하였다. 후손들은 대대로 이곳에 살았으며, 분무 원종공신 2명을 내고 무과 급제자 1명과 면장 1명을 배출하였다. 사상 향안에는 최씨 65명의 이름이 실려 있다.

[자연 환경]

주례동백양산엄광산을 등지고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 북서쪽이 사상구 주례 1동이고, 남동쪽이 사상구 주례 2동이다. 엄광산 산등성이 고개 아래에는 냉정(冷井)이라는 샘이 있는데, 물이 맑을 뿐만 아니라 시원하여 예로부터 유명하였다. 냉정 뒤편에 자리한 냉정 고개는 가야와 주례 사이 교통로로서 부산장·동래장·하단장·구포장 등을 오가던 상인들이 많이 이용하였다. 백양산은 해발 642m이며, 북쪽으로 금정산과 연결되어 있다. 백양사(白楊寺)에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전하며, 산 남쪽 기슭에 동평현의 치소가 있었던 동평현 성터가 남아 있다.

[현황]

주례동 경주 최씨 후손들은 마을 뒷산 경주 최씨 관가정파 주례 문중 재실을 건립하여 입향조 이하 조상들의 신주를 봉안하고 매년 10월 향제를 지내고 있다. 2013년 주례동 경주 최씨는 14대째를 이어 가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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