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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례동 골새 마을 여산 송씨 세거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7440
한자 周禮洞-礪山宋氏世居地
영어의미역 Residential place of Yeosan Song clan in Jurye-dong Golsae Village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사상구 주례동 골새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주영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거지
세거지 주례동 골새 마을 여산 송씨 세거지 - 부산광역시 사상구 주례동 골새 마을

[정의]

부산광역시 사상구 주례동에 있는 여산 송씨 세거지.

[명칭 유래]

주례동 골새 마을은 골짜기 사이에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골새란 ‘골짜기 사이’의 준말이다.

[형성 및 변천]

여산 송씨(礪山宋氏) 동래 입향조는 송극명(宋克明)[8세]이다. 그는 단종(端宗)의 비인 정순 왕후(定順王后) 숙부로 수양 대군(首陽大君)의 왕위 찬탈에 반대하여 관직을 버리고 단양을 거쳐 동래에 낙향하여 정착한 인물이다. 동래에서 유일하게 생원을 배출하고 또한 동래 원향의 5향집 가운데 한 집으로 6충신을 충렬사에 배향한 집안이다.

송극명의 아들 송윤희(宋允熹)[시조로부터 9세손]에게는 아들 6형제가 있었는데, 송승서(宋承緖), 송승효(宋承孝), 송승한(宋承翰), 송승보(宋承寶), 송승륜(宋承輪), 송승원(宋承源)이었다. 그 가운데 송승한의 후손이 반여동안락동 그리고 사상구 주례동 일대에 세거하고 있다. 송극명의 14세손인 송계방(宋啓邦)이 임진왜란 이후 주례로 이거 정착하여 사상 향안에 후손 16명이 기록되어 있다.

[자연 환경]

주례동 골새 마을 북쪽으로 백양산이, 남쪽으로 엄광산이 있어, 두 개의 산이 만나는 지역에 들어선 마을이다. 마을 바로 위쪽으로 학장천이 흐른다. 멀리 서쪽으로 낙동강이 흐른다.

[현황]

1960년대 초에는 여산 송씨 21가구가 살면서 1가구당 6,611.57㎡[2,000평]의 농지를 가지고 있을 만큼 부를 자랑하였다. 그러나 1968년 토지 구획 정리 사업이 시작되면서 1가구당 1,322.31㎡[400평]의 농토를 가지고 일부는 노동자로 전락하고 일부는 직장을 따라 동족 마을을 떠났다. 이런 이유로 2013년 현재는 세거지로서의 의미를 거의 잃고 몇 집만이 위토답(位土畓)과 재실을 지키고 있다. 1968년 사상구 백양대로 474-43[주례동 산103번지]에 주례사(周禮祠)를 건립하여 향조 이하 여러 조상의 향제를 매년 음력 10월에 지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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