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74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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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甘田洞慶州崔氏世居地 |
영어의미역 | Gamjeon-dong Gyeongju Choe Clan Hometow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사상구 감전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영진 |
[정의]
부산광역시 사상구 감전동에 있었던 경주 최씨 세거지.
[명칭 유래]
감전동(甘田洞)은 감동(甘東)과 서전(西田)을 합해 지은 이름이다. 감동은 감동도(甘東島) 혹은 감도(甘島)라 불렸던 낙동강 하구 모래톱 섬의 이름을 따서 붙인 지명이고, 서전은 서쪽 낙동강변의 모래톱에 의한 펄이 있어 ‘서발’[서쪽 펄] 혹은 ‘새뻘’[새로 생긴 펄]이라 불렸다가 이후 이곳이 점차 논밭으로 개간되며 서전리가 되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감전동 경주 최씨 세거지(甘田洞慶州崔氏世居地)의 입향조는 최귀만(崔貴萬)이다. 최귀만은 18세기 초에 기장(機張)에서 괘내리(掛乃里)로 옮겨 살다가 감전동에 정착하였다. 1937년 편찬된 『동래군지(東萊郡誌)』 성씨조에 이 문중과 관련한 인물이 기록되어 있는데, “최진수(崔震秀)는 문창후(文昌侯) 최치원(崔致遠)의 후예로 경주(慶州)에서 왔다. 최두윤(崔斗潤)은 최진수의 후손으로 최채봉(崔彩鳳)의 아들이며, 감전동에 거주한다”라고 되어 있다.
또 최두영(崔斗映)은 한학자로 사상 연구계(戀舊稧) 운영에 많은 공을 세운 인물이다. 그리고 사상 팔경대(沙上八景臺) 남단에 열녀 최씨의 정려각(旌閭閣)이 있었으나, 구획 정리 사업으로 1974년 회산(晦山)을 허물 때 최씨 집안에서 열녀비를 기장으로 옮겼다.
[자연 환경]
감전동은 북동쪽으로 백양산이 위치하며, 서쪽으로 낙동강변의 자연 습지와 접해 있다. 본래 이 지역은 여러 개의 섬[소요저도·유도·국매섬·장인도·감도 등]이 있던 낙동강 하류에 형성된 모래톱으로, 모래톱에 자라는 갈대를 베어 내고 논밭으로 개간하며 거주가 이루어졌다. 북동쪽 백양산의 기슭에서 평지 쪽으로 발달해 있다.
[현황]
1904년 작성된 『경상남도 동래군 가호안(慶尙南道東萊郡家戶案)』에 감전동의 서전 마을에 13가구 가운데 경주 최씨가 6가구, 1936년 발행된 『조선의 성(朝鮮の姓)』에 46가구가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현재는 흩어져 거의 살고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