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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7393
한자 回東洞礪山宋氏世居地
영어의미역 Residential Place of Yeosan Song Clan in Hoedong-dong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금정구 회동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주영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거지
가구수 3가구
개설 시기/일시 1454년 - 송극명 입향
세거지 회동동 여산송씨 세거지 - 부산광역시 금정구 회동동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회동동에 있는 여산송씨 세거지.

[개설]

당나라에서 호부 상서를 지낸 송주은(宋柱殷)의 7세손인 송자영(宋自英)은 아들 3형제를 두었는데, 첫째 아들이 여산송씨(礪山宋氏)의 시조인 송유익(宋惟翼)이다. 송유익은 고려 숙종(肅宗) 때 진사를 지내고 나라에 공을 세워 여산공에 봉하여졌으며, 은청광록대부 추밀원 부사(銀靑光祿大夫樞密院副使)에 추증되었다. 송유익의 아들인 송숙문(宋淑文)은 원종(元宗) 때 문하시중으로 여량(礪良)[여산] 부원군에 봉하여졌다. 시조의 묘는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호산리 산4번지문수동에 있다. 여산송씨 5세조 송염(宋琰)의 아들 대에서 다섯 파로 분파되었다.

[명칭 유래]

금정구 금사동 25~28통 일대에 있던 자연 마을이 회천 마을이다. 마을 앞을 흐르는 사천(絲川)[일명 실내]이 이곳에서 돌아서 흘러 내렸기 때문에 마을 이름을 회천이라고 불렀다. 우리말로 ‘물이 도는 내’라고 하여 돌회 마을이라고도 한다. 회동동은 동대 마을과 회천 마을의 첫 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여산송씨 동래 입향조는 송원윤(宋元尹)의 네 아들 가운데 막내인 군수 송장경(宋長卿)의 아들인 8세 송극명(宋克明)이다. 송극명은 동주공파(東洲公派) 파조가 되며, 통정대부 절충 장군 도정(通政大夫折衝將軍都正)에 이르렀다. 단종(端宗) 때 수양 대군(首陽大君)이 왕위를 찬탈하려고 하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고 하여 벼슬을 버리고 1454년(단종 2) 동래 회동동 보덕산 기슭에 와 동대(東臺)동천(東川)에서 시와 낚시로 여생을 보내며 자호를 동주(東洲)라 하였다.

송극명의 아들은 송윤희(宋允熹)로 아들 여섯을 두었는데, 이들에서 다시 분파하며 후손들이 대대로 동래 지방에서 세거하여 동래 향청과 향교의 주요 직책을 맡아 지역민을 위해 많은 일을 하였다. 큰아들 송승서[생원공파]의 후손들은 동래구 수안동, 복천동에 거주하고 둘째 아들 송승효[말미파]의 후손들은 금정구 구서동에 거주하고 있다. 셋째 아들 송승한의 후손들은 해운대구 반여 4동, 동래구 안락동, 사상구 주례동에 세거한다. 넷째 아들 송승보[부곡파]의 후손들은 금정구 부곡동에 거주한다. 다섯째 아들 송승륜[기장파]의 후손들은 해운대구 반여 1동, 남구 대연동기장군 철마면에 세거하고, 여섯째 아들남 송승원[동하파]는 해운대구 좌동에 살고 있다.

이 집안 유명 인물로는 송승한의 17세손 송광적(宋光迪), 송광제(宋光濟), 송광순(宋光洵) 형제다. 이들은 문학과 행의(行義)로 이름이 났다. 송광적은 동래 온정 개건비의 글씨를, 송광제는 「내주 축성비기」의 글씨를 썼으며, 송광순은 축성 사적을 기록한 인물이다. 이들은 동래에서 최고의 명필로 이름을 날렸다.

[자연 환경]

회동동 서쪽에 윤산(輪山)[317m, 일명 구월산]이 길게 형성되어 있다. 동쪽에는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수영강 유역에 평지가 형성되어 있다.

[현황]

2013년 현재 회동동에는 여산송씨 3가구가 살고 있다. 동주공파 덕산재(德山齋)와 세덕사라는 사당이 있어 매년 음력 3월 14일에 춘향제(春享祭)를 올린다. 세덕사에는 입향조 송극명을 비롯하여 임진왜란 공신[송남생, 송백, 송봉수, 송창문, 송의남, 송계남, 송광익] 등 8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8.02.21 영문항목명 표기 수정 Hoidong-dong -> Hoedong-d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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