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73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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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書洞密陽朴氏世居地 |
영어의미역 | Residential Place of Milyang Bak Clan in Seo-dong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금정구 서동 안골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송진모 |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서동에 있는 밀양 박씨 세거지.
[개설]
밀양 박씨(密陽朴氏) 족보에는 신라 제34대 경명왕(景明王)의 아홉 아들 중 첫째인 밀성 대군 박언침(朴彦忱)이 시조라고 기록되어 있다. 경명왕은 아홉 아들 중 여덟 명을 계림 팔도[신라 전국]에 봉군하였는데, 밀양[옛 이름 밀성]은 박언침이 봉군 받은 고을 이름이다. 고려 문종 때 최충(崔沖)과 더불어 태사 중서령을 지낸 박언침의 7세손 박언부(朴彦孚)를 중조(中祖)로 한다.
[명칭 유래]
금정구 서동의 밀양 박씨 세거지가 있는 안골 마을은 서동의 본동 마을인 섯골 마을의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안골[內谷], 또는 안마실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밀양 박씨의 무오보(戊午譜)에 의하면, 밀성 부원군 박언부를 1세로 하는 후손 중 부원군파는 경상남도 밀양군에서 세거한 것으로 보인다. 중조 박언부의 6세손인 은산 부원군 박영균(朴永均)의 큰아들인 송은(松隱) 박익(朴翊)은 고려 후기 팔은(八隱)의 한 사람으로 예부시랑 중서령을 지냈으며, 고려 왕조의 신하로서 은거하여 조선 태조(太祖)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박익의 큰아들은 우당(優堂) 박융(朴融)으로 이조 정랑을 지냈고, 박융의 아들 소고공(嘯皐公) 박건(朴乾)은 부사직(副司直)으로 밀양에서 청도에 정착하였다. 박건의 손자인 소요당(消遙堂) 박하담(朴河淡)은 청도 운문사 밑에 소요당을 짓고 조남명(曺南溟)·김대유(金大有)과 같은 명유들과 교우하였다. 박하담의 6세손인 박익용(朴翼龍)이 1702년(숙종 28) 청도 이서에서 동래 작장리에 내거(來居)하며 후학을 교훈하던 중 서동 안골 마을에 정착하게 되었다.
박익용의 증손자인 박경덕(朴暻德)은 부호군에 증직되고, 현손인 박정국(朴廷國)은 문학이 있었으며, 박정빈(朴廷彬)은 효우가 있었다. 박익용의 5세손인 박원묵(朴洹黙)은 통정으로 증직되었고, 박지묵(朴之黙)·박주묵(朴周黙) 등은 1937년에 간행된 『동래군지(東萊郡誌)』 세거 성씨 편에 기록되어 있다. 이외에 동래 고을의 향회(鄕會)에 많은 후손이 출입하였다.
[자연 환경]
서동 안골 마을 북쪽으로 동래의 진산인 윤산(輪山)이 있으며, 남쪽으로는 중군산(中軍山)이 가로 막아 분지를 이룬다. 동쪽은 사천(絲川)이 흐르고 있다.
[현황]
서동 밀양 박씨 후손이 번연(繁衍)하자 입향조를 비롯하여 선대의 유덕을 추모하려고 1978년 봄 송곡재(松谷齋)를 건립하여 입향조를 비롯하여 모두 45위의 위폐를 모시고 제향을 올린다. 제향은 음력 10월 첫째 일요일에 봉행한다. 2013년 현재 밀양 박씨는 11대째, 30가구 정도가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