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60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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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病醫院 |
영어의미역 | Hospitals and Clinics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송식 |
[정의]
부산광역시 일대에 있는 병원급 및 의원급 의료 기관.
[개설]
병원급 의료 기관은 「의료법」[법률 제12069호, 2013. 8. 13] 제3조, 제3조의 2에 의거, 의사, 치과 의사 또는 한의사가 주로 입원 환자를 대상으로 의료 행위를 하는 의료 기관으로, 30개 이상의 병상[병원·한방 병원만 해당], 또는 요양 병상[요양 병원만 해당, 장기 입원이 필요한 환자를 대상으로 의료 행위를 하기 위하여 설치한 병상]을 갖추어야 한다. 병원급 의료 기관의 종류는 병원, 치과 병원, 한방 병원, 요양 병원[「정신 보건법」 제3조 제3호에 따른 정신 의료 기관 중 정신 병원과 「장애인 복지법」 제58조 제1항 제2호에 따른 의료 재활 시설로서 제3조의 2의 요건을 갖춘 의료 기관 포함] 등이다. 또한 의원급 의료 기관은 통상 30개 미만의 병상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종류에는 의원, 치과 의원, 한의원 등이 있다.
[개항기 현대 의학의 도입과 제생의원]
부산에 현대 의학이 유입된 경로는 대게 두 가지 경로로 파악되고 있다. 첫째 경로는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에 의한 유입이고, 또 다른 경로는 선교 활동을 위한 구미(歐美) 여러 나라, 특히 미국으로부터의 유입이라고 할 수 있다. 개항기 부산 지역은 현대 의술이 부족하였기에, 일본은 부산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의 치료를 위해 1876년 부산에 한국 최초의 현대식 병원인 관립 제생의원을 건립하였다. 제생의원의 창립 목적은 다분히 군국주의 팽창을 위한 대륙 침략의 거점으로서 계략적인 의원의 설치였으나, 제생의원은 부산 현대 의료의 시초가 되는 의원으로 서울의 광혜원(廣惠院)보다 8년 앞선 의원으로 기록되어 있다.
1877년 역병과 이질이 만연하여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기도 하였으나, 제생의원의 현대 의술로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았고, 이때부터 매달 15일을 우두 접종일로 정하고 대중 예방 활동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이 사업의 대상자는 대부분 일본인들이었다. 일본 해군과 육군에 의해 운영되어 온 제생의원은 1885년 재 부산 일본 거류민 자치제에 의해 명칭이 공립병원으로 변경되었다. 공립병원은 1983년 부산거류민단이 구성되면서 부산거류민단립병원으로 변경되었다. 이후 부산세관 지정 의료 기관으로, 그리고 청일 전쟁 때는 일본 육군병참병원을 거쳐, 1914년 현 부산대학교병원 자리로 옮겨 명칭도 부산부립병원으로 개칭되었다.
한편 부산은 항구 지역으로 해외, 특히 일본으로부터의 감염병 침입이 많이 있었으며, 수산물 집산지로 어패류의 오염이 많았고 낙동강, 수영천 등을 통한 각종 수인성 감염병이 많이 발생하는 지역이었다. 1800년대 중후반, 부산에 많은 콜레라 환자가 발생하여 1889년 상설 피병원(避病院)을 설립하여 콜레라 등 감염병 환자를 치료하기도 하였다.
[선교 활동에 의한 현대 의학의 도입]
1882년 한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 후, 1884년 한국 최초의 기독교 선교사이자 의사인 호러스 뉴턴 알렌(Horace Newton Allen)이 한국에 왔다. 호러스 뉴턴 알렌은 주한미국공사관 부속 이사의 신분으로 부산에 처음 도착하여 부산이 선교 활동을 펼치기에 부적합한 지역이라고 판단하고, 인천으로 건너가서 주로 선교 활동을 펼쳤다. 이후 1885년 조선이 최초로 건립한 현대식 왕립 병원인 광혜원에서 의사로서 본격적인 활약을 하였다.
그 후 의사인 브라운(Brown) 부부가 부산에 와서 의료 사업을 하였으나, 2년 후 병으로 미국으로 귀국하여, 본격적인 의료 사업은 1893년 미북장로교회 소속 의사인 C. H. 어을빈(C. H. Irvin)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C. H. 어을빈은 현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 영선 고개에서 어을빈의원을 개업하고, 이후 영국인 의료 선교사 출신 의사 보엘을 고용하여 수많은 부산부민을 치료하였다.
당시 부산은 나병이 만연하였기에 구나 사업을 매우 활발히 전개하였다. 의사인 C. H. 어을빈과 빈톤(Vinton), 스미스(Smith) 목사 등이 영국의 인도 및 극동의 구라전도회[The Mission of Lepers in India and The East]로부터 재정적 원조를 받아, 1909년에 현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에 남한나병원을 설치하고 나병 환자를 수용하여 치료하였다. 이후 호주에서 온 의사 출신 맥캔지 목사는 간호사 출신인 부인과 함께 구나병원을 건립하고 많은 나환자들을 치료하였으며, 나환자들에게 전답을 나누어 주고 그들이 직접 자급자족을 하도록 하는 자립 형태로 운영하였다.
한편 러일 전쟁 이후인 1904년 8월 일본에 의해 제1차 한일 협약이 체결되었고, 다음 해 현대 의학을 도입한 후 반일 친한적 외교 활동을 전개해 오던 호러스 뉴턴 알렌이 타의에 의해 본국으로 소환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일방적으로 체결되어 국권이 일본에 넘겨져 외무부가 폐지되고 조선통감부가 설치되어 한국의 정치를 주도하고, 주한 일본군 사령부가 설치되는 등, 국가 권력의 대부분이 일본의 수중으로 넘어가게 되면서, 일본 민간인들은 동인회라는 어용 단체를 조직하여 대륙 침략의 민간 기지 역할을 할 동인의원이라는 의료 기관을 전국 주요 지역에 설치하였다.
[일제 강점기 부산의 의료 활동]
일제 강점기에는 관립의학교와 세브란스의학교 등 현대 의학 교육이 실시되었고, 유학 후 귀국한 의사들로 한국인 의사들이 점차 증가하였지만, 부산은 도시 형성 기반이 약하였을 뿐만 아니라, 급격한 근대화로 상공업 분야에 치중되어 발전한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의과 대학은 설립되지 않았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의료 기관인 제생의원이 일본인에 의해 설립되었기 때문에 다수의 일본인 의사들만 정착하고 있었다. 1906년 부산에서 의사 10명이 의사회를 발족하였으나 모두 일본인이었고, 1920년대 초에 부산부 의사회가 발족되었으나 이 또한 일본인 중심이었다.
그러나 1910년부터 개화에 눈을 뜬 부산 출신 젊은이들이 서울과 일본 등지에 유학을 하여 현대 의학을 배워 돌아오기 시작하였다. 1913년 경성의전을 졸업한 한진표가 처음으로 현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에 경남의원을 개업하였고, 이근용이 영주동에서 이근용외과의원을 개업하였으며, 1919년 이면재가 현 동구 초량동에 해산의원을 개업하였다.
이들은 단결과 친목의 필요성을 느끼고, 1920년대 초 한국인 의사만의 친목 단체인 의우회를 조직하고 초대 회장에 한진표를 선출하여 상호 친목을 도모하면서 일본인 의사들과 맞서게 되었다. 의우회는 한국인 의사들의 권익 옹호를 위해 활동하였지만 독립된 의사 단체로서의 기능은 미미하였다. 그러나 1930년대에 한국인 의사의 증가와 함께 회원 수가 15명이 되었다. 그리하여 1945년 8월 광복 전까지 부산에는 94명의 의사가 있었다[일본인 의사 47명, 한국인 개업 의사 36명, 봉직 의사 11명].
당시 부산에서는 백제병원이 매유 유명하였다. 1922년 현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에 목조 건물로 개업하였다가 1930년 다시 철근 콘크리트의 5층 벽돌 건물을 지어 한국인 최초의 개인 종합 병원을 설립하여 당시 ‘부산 지역 3대 병원[부산부립병원, 철도병원, 백제병원]’ 중의 하나로서 많은 진료 활동을 펼쳤다. 내과, 외과, 이비인후과, 치과 등의 전문 과목을 진료하였고, 의사와 간호사의 수는 약 30명이었다. 백제병원은 그 당시 상당히 큰 규모의 병원이었지만, 과중한 재정 부담과 일본인의 모함으로 오랫동안 진료를 하지 못하다가 1932년 폐업하였다. 하지만 백제병원의 개업은 부산 지역의 일본인에게 한국인도 종합 병원을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광복 이후 부산의 병원·의원]
1945년 광복 이후, 미군은 일본인들을 모두 본국으로 송환시키고 군정을 시작하였다. 그와 동시에 수많은 귀환 동포들이 부산항을 통해 귀국하였다. 미군은 보건과 감염병 대책, 구급 환자 문제의 해결을 위해 부산의사회에 협조를 요청하였다. 이에 부산의사회는 60세 이상 의사를 제외한 전 의사들을 동원하여 매일 환자들을 치료하였다.
하지만 당시 부산은 일본 사람의 독무대였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귀국한 후 부산은 의료 인력 부족과 의약품의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미군정 당국은 전국의 의사들에게 “부산에 와서 개업을 하게 되면 편리를 제공하겠다.”고 라디오 방송을 하였고, 이로 인해 각지의 의사들이 부산, 특히 일본인들이 독점하고 있었던 용두산 주위에 많이 개업하였다.
이후 6·25 전쟁의 발발로 인해 부산에 외국의 많은 선교 병원과 적십자 병원이 설립되었다. 당시 설립된 병원은 쉬든적십자병원, 서독적십자병원, 메리놀병원, 부산위생병원, 왈레스기념침례병원, 성 분도병원, 일신기독병원 등이 있었고, 대부분 현재까지 남아 있다. 역설적으로 부산 의료는 광복과 6·25 전쟁을 거치면서 선진화된 미국 의학이 도입되고 의료인들이 증가하면서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맞이하였다.
[부산 지역의 병원급 의료 기관 현황]
2012년 12월 현재 부산 지역의 병원급 의료 기관은 총 296개소로 병원 103개, 요양 병원 154개, 노인 전문 병원 3개, 정신 병원 15개, 치과 병원 12개, 한방 병원 9개 등으로 구분된다. 각각의 병상 수는 병원 1만 2,828개, 요양 병원 2만 2,231개, 노인 전문 병원 667개, 정신 병원 3,976개, 치과 4개, 한방 병원 647개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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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별로 살펴보면, 사하구 지역의 병원급 의료 기관의 수가 40개로 가장 많았고 그 뒤를 이어 해운대구 38개, 금정구 31개, 동래구 30개 등의 순이었다. 반면 강서구는 3개로 가장 적었고 그 뒤를 이어 영도구 4개, 서구 6개, 중구 7개의 순이다.
[부산 지역의 의원급 의료 기관 현황]
2012년 12월 현재 부산 지역의 의원급 의료 기관은 의원 2,089개소, 치과 의원 1,124개소, 한의원 1,023개소, 부속 의원 9개소로 구분된다. 각각의 의료 기관이 보유한 병상 수는 의원 5,775개, 치과 의원 12개, 한의원 18개이다. 의원급 의료 기관의 수는 서면 메디컬 스트리트가 조성된 부산진구 지역이 377개로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많았고, 해운대구[258개], 사하구[169개], 동래구[165개]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 강서구 지역은 11개로 가장 적었고, 기장군[55개], 서구[57개], 영도구[74개] 등의 순서로 적게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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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인구의 노령화와 요양 병원]
부산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요양 병원의 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7대 광역시 지역에서는 가장 많은 155개였고, 모든 광역 자치 단체에서도 경기도[221개]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요양 병원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러한 요양 병원 수의 증가는 부산의 급격한 노령화와 7대 광역시 중 노인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것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2012년 3월 운영 중인 요양 병원 937개를 대상으로 입원 진료 적정성을 평가한 결과, 종합 점수 평균에서 부산[75.8점], 전남[73.2점], 광주 및 전북[71.9점], 경북[71.4] 순으로, 부산이 가장 높은 점수를 얻었다.
[부산 지역의 전문 병원]
전문 병원은 「의료법」 제3조의 5에 의거, 전국의 병원급 의료 기관 중 특정 질환이나 특정 진료 과목을 특화하여 전문화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으로, 병원의 신청에 의해 환자 구성 비율, 진료량, 필수 진료 과목, 의료 인력, 병상 등을 평가하여 전문병원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보건복지부 장관이 3년 단위로 지정한다. 전국의 99개 병원급 의료 기관이 2011년 11월 전문 병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부산 지역에는 12개의 병원급 의료 기관이 지정되어 2014년까지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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