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5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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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在來市場 |
영어의미역 | Traditional market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준현 |
[정의]
부산광역시에 소재하는 전통 방식으로 상품 거래가 이루어지는 시장.
[개설]
「재래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제2조]에 따르면, 재래시장은 등록 시장이나 인정 시장과 같이 허가된 시장으로 1980년대 이전에 개설된, 재개발이나 근대화가 요구되는 시장을 뜻한다. 그리고 「유통 산업 발전법」 제8조에 따르면 대규모 점포로 등록된 시장을 지칭한다.
[유래와 변천]
장시(場市)라고 칭해지는 시장은 농경 사회의 직접 생산자들이 필요한 생산물을 교환하는 향시(鄕市)인 농촌 시장에서 유래되었다. 1470년 조선 성종 때 장문(場門)이라는 시포가 처음 열렸다는 기록을 장시의 효시로 보고 있다. 부산 지역 전통 시장의 효시는 개항기 이후 부산의 성장과 함께 재래시장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부산의 5일장은 지방 향시인 동래의 정기 시장에서 유래한 것이며, 동래부 관할 아래 5일장 체계에 동래 읍내장[동래 시장], 구포장[구포 시장], 부산장[부산진 시장], 좌수영장[수영 팔도 시장], 하단장[하단 시장], 독지장[구평 시장]이 속하였다.
1. 동래 시장
부산 지역의 대표적인 전통 시장은 동래 도호부 관할 아래 있었던 동래 시장의 읍내장[2, 7일]이다. 동래 읍내장에 대한 기록이 1770년(영조 46)에 편찬된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에 동래 지역 장시에 대한 기록이 처음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 동래 읍내장은 그 이전에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19세기 초 서유구(徐有榘)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라는 사료에 의하면, 농산물로 쌀·콩 등이 거래되고, 수산물로는 청어·대구·해삼 등이 거래되었으며, 수공업 제품으로 면포·마포·비단·식기·종이 등 주요 생활 물품이 동래 읍내장에서 거래되었다고 한다.
동래 읍내장은 1924년 일제 강점기에 공설 시장으로 지정되었으며, 수안동, 복천동, 명륜동 지역에 걸쳐 형성되었다. 이후 1937년에 동래 공설 시장으로 승격되면서 건물이 세워져 상설 시장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해방 이후 동래 상설 시장은 1955년 부산 공설 시장으로 승격되었으나, 1968년 12월 대형 화재로 시장 건물이 소실되었다. 1969년 동래시장상인연합회의 허가로 1970년 2층 시장 건물이 준공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2. 구포 시장
구포 시장이 최초로 선 것은 조선 중엽 17세기 무렵으로, 낙동강 선창에서 구포 안쪽으로 들어오는 공터와 골목이었으며 현재의 구포 1동 파출소 중심 골목 시장쯤이었다. 역사적 기록으로는 1871년(고종 8) 『영남읍지(嶺南邑誌)』에 처음 구포장으로 등장하였다. 구포장[3, 8일]은 동래 읍내장과 함께 5일장 체계에 속한다. 본래 구포 지역은 낙동강 포구에 자리 잡아 수로를 통해 들어온 물자를 육로로 보내고, 육로로 들어온 물자를 뱃길로 보내는 육상과 수운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담당하였다. 즉, 구포는 물산의 집산지이자 교역지였다. 이후 5일 정기 시장인 구포장은 1932년 상설 시장으로 발전하였고, 이것이 현재 구포 시장의 전신이다.
1973년 구포시장번영회가 출범하여 선어구 762.3㎡[231평], 곡물구 613.8㎡[186평]의 2개 공구로 구성된 상설 시장으로 발전하였다. 현재 상설화 되어 있는 점포는 600여 개이며, 지금도 여전히 3일, 8일 장날이 되면 노점상들이 즐비한 도심 속의 대규모 전통 시장으로 난전을 이룬다. 구포장에서는 1919년 3월 29일[음력 2월 28일] 정오에 농민, 상인, 노동자, 학생 등이 주도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고, 당시의 항일 정신을 기념하기 위해 1999년 이후로 매년 3월에 구포 장터 3·1 만세 운동 재현 행사가 거행되고 있다. 그리고 6·25 전쟁 이후 부산 지역으로 피난해온 피난민들이 먹기 시작한 ‘구포 국수’와 화물 집산지였던 구포에 발달한 객주에서 유래한 ‘구포장국밥’이 유명하다. 또한 구포장 하면 떠오르는 것이 가축 시장인데, 과거에 비해서는 쇠락했으나 성남 모란장과 함께 전국 최대의 개시장으로 손꼽힌다.
3. 부산진 시장
부산진 시장의 원래 명칭은 ‘산진 시장’이며 5일장 정기 시장인 부산장에서 비롯되었다. 부산장은 영남에서 두 번째로 큰 시장이었다. 『동국문헌비고』에 의하면 “부산진성 서문 밖에 있는 미곡과 건어물 집산지로 4일과 9일에 장을 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4, 9일에 장이 서는 부산장은 동래장, 구포장 등과 함께 동래군의 5일장 체계에 속해있었다. 부산진성 지역은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여 전통적인 장시로 열렸으며, 1913년 9월 함석 상가를 지어 상설 시장으로 발전하였다. 1930년에 부산진시장번영회가 발족하고, 6,600㎡[2,000여 평] 대지에 660㎡[200평] 규모의 시장이 건립되었다. 부산시의 민영화 정책 추진에 따라 1967년 민영화되었고, 이후 1970년 2만 6400㎡[8,000여 평]의 4층 현대식 건물을 건립하였다. 주요 상품은 포목, 피목, 기성복, 양복 원단, 침구, 신발 등 의류 및 혼수 관련 상품으로, 혼수 도매 전문 시장으로 유명하다.
[현황]
근대화, 산업화의 물결과 함께 대형 할인 마트, 소매점, 백화점, 전문 상가 등 다양한 유통 업체의 등장하였고 최근 정보화의 물결로 인터넷 상거래 및 홈쇼핑 등 유통관련 매체 역시 급속도로 성장함에 따라 재래시장의 세력은 급속하게 약화되고 있다. 이러한 전통 시장의 쇠락 가속화를 막기 위하여 2004년 「재래시장 육성을 위한 특별법」[현 「전통 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 2010년 6월 30일 개정]이 제정되었다.
특별법 제정 이후 재래시장의 특화 육성을 통한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시 차원에서의 다양한 방안이 논의 및 추진되고 있다. 부산광역시에서는 낙후된 시설을 개·보수할 수 있도록 시설 현대화 사업을 지원하고 있으며, 오래되고 불량한 영세 전통 시장의 상권을 보호할 수 있도록 소규모 환경 개선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상인들에게 신경영 기법을 교육하고 시장 이미지를 개선·홍보하는 등 경영 현대화 촉진 사업도 지원하고 있으며, 특성화 시장을 지정하여 전통 시장 상권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한다. 2013년 현재 부산광역시에서는 시설 현대화 사업에 192억 원, 소규모 환경 개선 사업에 19억 4000만 원, 경영 현대화 촉진 사업을 위해 50개 시장에 20억 원, 전통 시장 특화 육성을 위해 추가로 1~2개 시장 지정 및 시장당 1000만 원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