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46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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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明木材商社 |
이칭/별칭 | 동명목재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일동 862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성일 |
[정의]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일동에 있었던 목재 관련 업체.
[설립 목적]
동명목재상사는 가구 판매 및 제재업[합판 판매]을 위한 제재소로 설립되었다.
[변천]
1925년 부산부 부산면 좌천동[현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에 동명제재소로 설립되었다. 1945년 부산부 범일동[현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일동 862번지]의 합판 제조 및 제재 공장으로 확장 이전하였다. 1949년 동명목재상사(東明木材商社)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1960년 부산시 남구 용당동 123번지에 제1 합판 공장을 착공하였고, 열대 원목인 나왕(羅王)[lauan, 용뇌향과(龍腦香科)의 상록 교목]을 수입하여 합판을 생산하였다. 1961년 국내 최초로 합판 수출을 개시했으며, 수출액은 26만 3000 달러였다. 누적 수출액은 1962년 3000만 달러, 1964년 4000만 달러에 이르렀다. 1965년 연간 매출액은 50억 원이었다. 1967년 제2 합판 공장이 완공된 후, 1968년 수출 최고상을 받았으며, 연 수출액은 2174만 달러였다.
1967년 10월 25일 부산은행을 설립하였다. 1969년 11월 30일 수출 최고상을 수상하였다. 1970년 연 매출액은 100억 원이었다. 1970년과 1971년에도 국내 수출 최고상을 수상하였다. 1973년 5월 24일 부산투자금융을 설립하였다. 1973년 고무 롤러 공장과 페인트 공장을 신설하고 1974년 제3 합판 공장과 화학 가공 공장을 신설하였다. 1974년 11월 19일 동명산업을 설립하였다. 1975년 부영실업을 설립하였다. 1976년 동명수출포장, 동영제지, 동성해운을 설립하였다. 1976년 연간 매출액은 500억 원이었다. 1977년 1월 1일 동명개발, 4월 11일 동명문화학원, 1978년 1월 1일 동명중공업을 설립하였다. 19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와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에 의해 반사회적 기업으로 몰리면서 동명문화학원을 제외한 전 재산을 몰수당하였고, 동명그룹은 해체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나왕 합판, 라미나 합판[Ramina Plywood, 미장 합판(美粧合板)의 한 종류], 투명도장 합판, 답프 합판[화장 합판(化粧合板)의 한 종류], 미장 합판, 제재품 등을 생산하였다. 제1, 제2, 제3 공장을 가동한 1974년 3월 당시 일간 17만 장의 합판 생산 시설을 갖춘 세계 최대의 합판 회사였다. 길이로 환산하면 418.8㎞에 달하는 것이었다. 동명목재상사의 최대 수출 실적은 1977년의 1억 35만 달러로서 단일 품목으로는 국내 최대의 수출 규모였다. 수출 경기와 내수 판매로 매년 40% 이상의 신장률을 나타내었고 종업원만도 7,000여 명에 달했다. 월 생산 능력은 나왕 합판이 13만 5500㎥, 라미나 합판 2만 300㎥, 투명 도장 합판 4만 1000㎥, 답프 합판 1만 2000㎥, 미장 합판 25만㎥, 제재품 9,000㎥ 등이었다.
1970년대부터 중화학 공업 분야로 사업을 확대해 나갔다. 동명그룹은 모체인 동명목재상사를 비롯하여 동명산업, 동명개발, 동명중공업, 동명해운, 동명식품 등 6개 회사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중 중화학 공업 분야의 회사는 동명산업과 동명중공업 2개 회사이다. 동명산업은 동명목재상사에서 이미 가동 중이던 기존 포르마린 요소 수지, 페인트 등 화학제품 부분을 하나의 법인체로 독립시킨 것이다.
동명중공업은 제3차 경제 개발 계획의 정부 권장 산업의 일환으로 창원 기계 공단에서 설립되었다. 동명중공업 창원 공장은 1977년 2월에 완공하였다. 동명중공업의 첫 사업 분야는 전동 지게차의 자체 생산과 일본 유켄(YUKEN) 사의 유압 기기를 수입, 판매하는 것이었다. 이들 분야는 국내에서는 미개척 분야였다. 특히 유압 기기는 기계 공업 자동화의 필수 근간이었다. 전동 지게차 사업은 동명목재상사에서 수입, 사용하고 있던 FBR형을 샘플로 하여 완전 분해, 순수한 자체 기술로서 국산화에 착수하였다.
[의의와 평가]
동명목재상사는 부산 지역의 대표적인 기업이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기업이었다. 세계 최대의 합판 생산 시설을 갖추고 있었고, 중화학 공업 분야로 진출하면서 합판 생산 및 유통과 관련된 거대 기업군을 구성하였다. 1962년 종사자 수가 369명이었고, 1980년에는 동명목재에만 6,417명이 고용되어 있었다. 계열사를 합하면 1만 명이 넘었다. 회장이었던 강석진(姜錫鎭)은 동명문화재단을 설립하였고, BBS 운동[Big Brothers and Sisters Movement, 청소년 선도 운동]을 적극적으로 하였으며,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을 여러 차례 역임하는 등 부산 지역 주요 경제인이었다. 경영상의 문제가 전혀 없었던 것도, 당시의 비교 우위에 입각한 선택이 반드시 옳았던 것도 아니지만 부산 지역의 거대 기업이 갑자기 사라진 것은 지역 경제의 타격이었고, 현재까지도 아쉬움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