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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4473
한자 釜山商業會議所
영어의미역 The Busan Board of Trade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조준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경제 단체
설립 시기/일시 1879년 8월연표보기 - 부산상법회의소 설립
설립 시기/일시 1916년연표보기 - 출범[조선인상업회의소와 부산상업회의 통합]
해체 시기/일시 1916년 3월연표보기 - 해체[조선인상업회의소와 부산상업회의 통합]
개칭 시기/일시 1893년 1월연표보기 - 부산상법회의소에서 부산항일본상업회의소로 개칭
개칭 시기/일시 1908년연표보기 - 부산항일본상업회의소에서 부산상업회의소로 개칭
개칭 시기/일시 1931년 4년연표보기 - 부산상업회의소에서 부산상공회의소로 개칭
최초 설립지 부산상법회의소 -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동

[정의]

개항기 부산 지역에 있었던 일본인 경제 단체.

[설립 목적]

부산상업회의소는 한국과 일본 양국 무역에 관한 일체의 이해득실을 상의하고, 무역과 관련한 내용에 대한 관청의 하문(下問)에 답하며 의견을 관청에 건의함과 동시에 물품 진열소를 관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변천]

부산항 개항 이후인 1879년(고종 16) 8월에 부산상법회의소로 설립되었으며, 1881년(고종 18)에 부산부(釜山府) 금평정(今平町)[지금의 중구 광복동]에 신축 기공하였다. 초기의 조직은 무역과 은행, 해운 및 도매 등 네 종류의 영업자로 제한하였으나, 1885년(고종 22) 2월에 회원 자격 제한을 폐지하고 중매상을 회원으로 추가하여 회원의 범위를 확대하였다.

1890년(고종 27)에 방물상을 추가하여 의원 정수는 25명으로 늘어났으며, 그해 9월에 상업회의소 조례를 발포하고 동 조례에 따라 1892년(고종 29) 12월에 정관을 만들었다. 1893년(고종 30) 1월에는 회원의 조직을 상법 제4조 및 제5조에 게재된 상거래의 각 부에 속하는 영업자로 하고 영업 종목 및 의원 정수를 조정하였으며, 부산항일본상업회의소로 개칭하였다.

1902년(고종 39) 4월에 부산항일본상업회의소 내에 상품 견본 진열소를 설치하였고, 1903년(고종 40)에 현 부산광역시 중구 신창동 1가의 새부산타운 자리에 벽돌 3층 건물의 진열관을 신축하여 1905년(고종 42)에 준공하였다. 1908년(순종 2)과 1909년(순종 3)에도 납세 자격에 대해 정관 개정을 하였으며, 1908년의 개정에 따라 부산항일본상업회의소는 부산상업회의소로 개칭하였다.

1915년 「조선상업회의소령」 발포에 의거하여 1916년 3월에 부산상업회의소를 해산하고, 조선총독부 제령 제4호 「조선상업회의소령」에 따라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운영하던 조직을 통합하여 한국인의 동래상업회의소와 일본인의 상업회의소는 각각 해산하였다. 그해에 한국인 의원 5명과 일본인 의원 25명, 회두 일본인, 부회두 2명 중 1명은 한국인인 부산상업회의소가 출범하였다. 이후 1931년 4월에 부산상공회의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부산상업회의소의 주요 사업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무역 관련 활동으로 특히 미곡 관련 조사 활동이다. 일본인상업회의소는 1888년(고종 25)과 1892년 두 차례에 이어 미곡 수출에 필요한 한국 내 미곡 작황에 대해 조사하였으며, 1906년(고종 43)에는 곡물 반출지 실황 조사를 위해 중요한 철도역 및 해안을 시찰하였다. 그리고 수집된 곡류를 계량하기 위하여 부정 도량형을 추방하고 도량형을 통일하였으며, 일본 화폐를 한국 땅에 통용시켰다.

둘째, 상품 홍보 및 박람회 개최에 관한 활동이다. 한국 내 수입 상권을 확대하고 일본 공산품 판매처를 마련하기 위하여 1902년 1월에는 부산 일본 상품관이 개관하였고, 1905년 4월에는 일한 무역 박람회를 개최하기 위해 상품 진열관을 새로 신축하고 개관하였다. 실제로 일본인보다 한국인 관람객이 많은 것으로 나타나지만, 기대 효과보다 실적이 저조하여 1910년(순종 4) 이후 상품 진열관의 기능을 축소하였다. 셋째, 사회 간접 시설 관련 활동으로, 일본인상업회의소는 항만 시설을 확충하고자 하였으며, 영선산 착평 공사와 경부선 연장으로 철도 교통의 편리함과 원활한 상품 유통을 가능하게 하였다.

[의의와 평가]

부산상업회의소는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회의소였으며, 한국과 일본 양국 간의 무역을 원활하게 하고자 하였지만 상공업 본연의 이익 추구라는 목적 이외에 일본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한국 최초의 일본인 경제 단체였으며, 일본 상업 회의소의 효시인 동경(東京)[도쿄, Tokyo]과 대판(大阪)[오사카, Osaka]상법회의소보다 1년 정도 늦게 설립되어 아주 이른 시기에 설립되었다. 부산상업회의소는 일본 외에 일본 상업 회의소로서는 중국 상하이[上海] 다음으로 오래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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