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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4466
한자 大山
영어음역 Daesan
이칭/별칭 설천(雪泉)
분야 종교/불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서정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승려
성별
대표경력 어장(魚丈)
활동 시기/일시 1897년 12월 - 『범음 요집』 간행
학교|수학지 범어사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지도보기
활동지 범어사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지도보기

[정의]

일제 강점기 범어사에서 부산불교어산회를 조직하여 범패승들을 지도한 부산 지역의 제1세대 어장.

[활동 사항]

대산(大山)은 태어난 해와 작고한 해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870년대에 태어나 1942년에 작고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범어사의 이름난 어장(魚丈)[불교 의례에서 범패의 전 과정을 하는 승려]이자 학자이었다. 대산은 특히 글씨를 매우 잘 써서 서체만 해도 세 가지로 달리하여 『대산집(大山集)』을 편찬하였다고 전해진다.

대산의 작고 이후 『대산집』의 귀중함을 알고 있던 범어사 출신 승려 법안[현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동 길상사 주지]은 『대산집』을 소장하고 있던 범어사 승려 춘산에게 본인의 도민증을 맡기고 한 달 동안 책을 빌려 사본을 만들어 현재 보관하고 있는데, 당시의 『대산집』은 몇 권이 합본되어 매우 두꺼웠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 의식집별로 나누어 각각 사본하여 현재 소장하고 있는데, 『범음 요집(梵音要集)』·『예수문(豫修文)』·『각점안문(各點眼文)』 등 총 3권이다. 이 중 『예수문』과 『각점안문』에는 저자의 기록이 없지만, 『범음 요집』에는 말미에 편서(編書)한 저자 및 날짜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즉 “광무 원년(1897, 고종 34) 섣달[음력 12월] 중완 때 사문 설천이 금정산 금강난야[금강사]의 소나무 창 아래 향로 곁에서 옮겨 쓰다[光武元年臘月仲浣沙門雪泉金井山金剛蘭若之松窓下擁爐而移書]”라고 적혀 있다. 따라서 책을 집필한 당시 대산은 27세의 젊은 나이로, 설천(雪泉)은 출가 때의 법명으로 추정된다.

대산은 19세기 후반~20세기 초·중반인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 이전에 활동을 한 범어사의 대어장(大魚丈)으로 법제자[법맥을 이은 제자]를 비롯하여 소리 제자[소리를 이은 제자]까지 무수한 제자를 두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불조원류』 하권에 기록된 대산의 법제자는 용해·학봉·영봉·용악·용운·동명 등 총 6명이다. 이 중 소리까지 이은 제자는 학봉과 동명 두 명이다. 이 외 소리 제자로 호산·함허·벽파·원봉 등을 들 수 있다.

따라서 대산은 많은 법제자들과 소리 제자들을 둔 대 선지식이자 학자이며 범패승으로 일제 강점기 때 범어사 어산회를 조직하여 불교 의식을 활발히 이끌어 간 장본인이다. 범어사 사찰 어귀의 어산교(魚山橋)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제 강점기 범패승들에 의해 세워졌다. 당시 범어사 범패 어장인 대산의 영향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대산의 출중한 법제자이자 소리 제자인 용운대산의 뒤를 이어 범어사뿐 아니라 부산불교어산회에서 범패 강사를 하며 부산의 불교 의식을 위해 후학들을 길렀고 부산광역시 무형 문화재 제1호 「범음·범패」 보유자[1972]로 지정되었다.

[사상과 저술]

『범음 요집』 , 『예수문』, 『각점안문』의 세 권을 모두 다른 글씨체로 간행하였다. 후대에 이를 합본하여 보관하였는데, 이를 통틀어 『대산집』이라 한다.

[묘소]

화장하여 따로 묘가 존재하지 않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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