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38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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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周老堰 |
영어음역 | Juro-eon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장동|해운대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수한 |
[정의]
조선 후기 동래부 동면에 있던 제언.
[형성 및 변천]
주로언(周老堰)은 『동래부지(東萊邑誌)』[1740] 제언조에 기록될 정도로 부산부의 대표적인 제언(堤堰)이었다. 19세기 전반은 전국적으로 사점(私占) 등으로 제언 축조가 활발해지는데 부산 지역도 9곳에서 20곳으로 늘어났다. 이때 주로언이 만들어졌다. 장산 일대 골짜기 비탈면을 이용해 단기간에 쌓아 올린 임시 제방으로 보인다. 둘레는 약 129.7m[428척], 길이 약 67.27m[222척], 폭 약 43.03m[142척]로 평균 수심은 약 1.67m[5척 5촌]이다.
주로언에 대한 기록은 1899년 필사된 『동래부 읍지(東萊府邑誌)』[1832] 제언조가 마지막이다. 그리고 『동래군지(東萊郡誌)』[1937] 제언조에는 빠져 있는 것으로 볼 때 1909년 수리 조합 조례 발표 이후 수명을 다한 것으로 보인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동래부 읍지』를 보면 주로언은 동면(東面)에 위치하고 같은 시기 읍지(邑誌) 등에는 부(府)에서 동쪽으로 약 2.75㎞[7리] 떨어진 곳에 있다고 하나 정확한 위치는 확인할 수 없다. 조선 시대 동래부 동면은 지금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장동과 해운대구 일대이다.
[관련 기록]
1740년에 펴낸 『동래부지』 제언조에 “주로언은 동래부 동쪽 7리 되는 곳에 있다. 방죽의 길이는 222척이며 폭은 142척이다[周老堰在府東七里長二百二十二尺廣一百四十二尺]”라고 기록되어 있고, 1759년에 펴낸 『동래부지』 제언조에 “주로언은 동래부 동쪽 7리 되는 곳에 있다. 못의 둘레는 428척이며 물 깊이는 5척 5촌이다[周老堰在府東七里周四百二十八尺水深五尺五寸]”라고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