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38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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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尾要堰 |
영어음역 | Miyoeon |
이칭/별칭 | 와요언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개금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수한 |
[정의]
조선 후기 동래부 동평면 와요리에 있던 제언.
[명칭 유래]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개금동 일대가 조선 시대 행정 구역으로 동래군 동평면 와요리이었기 때문에 이 지역의 제언(堤堰)을 와요언(瓦窯堰·瓦要堰)이라고 하였다. 개칭된 미요언의 명칭 유래는 알 수 없다.
[형성 및 변천]
미요언이 설치되어 있던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개금동 일대는 백양산 아래로 많은 하천이나 샘물이 있어 제언의 형성지로 적합한 곳이었다. 임진왜란 후 이곳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면서 농경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미요언이란 명칭이 처음 등장하는 기록은 『동래부 읍지(東萊府邑誌)』[1832] 제언조이며, 이후 간행된 지리지에서 이 명칭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런데 『동래부지(東萊府誌)』[1740]에서는 와요언(瓦窯堰), 『여지도서(輿地圖書)』[1765]에서는 와요언(瓦要堰)으로 표기된 제언이 보인다. 그리고 모든 지리지에서 일관되게 이 제언들의 위치를 “부 동쪽 10리[약 4㎞]에 있다”라고 한 점을 참조할 때 미요언의 원래 이름이 와요언인 것을 알 수 있다. 미요언의 규모는 둘레 약 58.18m[192척], 길이 약 27.88m[92척], 폭 약 19.09m[63척]로 평균 수심 약 1.06m[3척 5촌]이다.
미요언은 1906년 일제가 수리 조합 조례를 발표하고 이어서 궁방이 관리하는 수리 시설 대부분을 국유화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고, 이후 근대적 저수지가 등장하면서 용도가 폐기된 것으로 보인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부산에서 원래 가마터를 뜻하는 ‘와요’라는 지명을 사용한 곳은 지금의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개금동이다. 하지만 개금동 일대에서 그 이름에 걸맞은 가마터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다.
[관련 기록]
1832년에 간행된 『동래부 읍지』 제언조에 “와요언은 [동래]부 동쪽 10리에 있다. 방죽의 길이는 92척, 폭은 63척이다[瓦要堰在府東十里長九十二尺廣六十三尺]”라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