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36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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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孫世鸞 |
영어음역 | Son Seran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찬열 |
[정의]
1973년 부산시립무용단 창단을 주도해 초대 안무자를 맡으며 부산 무용계의 초석을 다진 여성 무용가.
[활동 사항]
손세란(孫世鸞)[1933~2010]은 경상남도 의령에서 토호의 딸로 태어나 진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일찍부터 신문화를 접한 부모의 영향으로 자유분방하게 자라났으며, 어려서부터 무용에 남다른 소질을 보였다. 1952년 가족과 함께 부산에 정착한 뒤 이매방, 한영숙, 황무봉(黃舞峰) 등에게 사사하며 본격적인 무용 수업을 받았다.
1962년 한국무용예술연구소를 열고 첫 개인 발표회를 열었다. 1964년 강이문(姜理文), 황무봉 등과 ‘부산명보소녀가무단’을 창단하여 일본 도쿄, 교토, 오사카 등을 순회공연하였다. 이때 손세란은 일본에 남아 오사카예술대학에서 무대 예술을 공부하며 자신의 무용 세계를 넓히는 한편, 호오무라도모미발레학교를 수료하였다.
1967년 무용 학원을 열고 한성여자대학[현 경성대학교] 등에 출강하며 후진 양성에도 열정을 쏟았다. 1973년 부산시립무용단 창단을 주도해 초대 안무자를 맡아 발전의 기초를 다지는 일에 헌신하였다. 그리고 다시 1984년 부산시립무용단 상임 안무를 맡았다. 그 후 한국 춤의 해외 소개와 제자 및 후진 지원에 매진하였다. 2010년 폐암으로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1962년 첫 무용 발표회 이래, 1976년 이광수 원작 소설 「꿈」을 무용극화하였다. 이때부터 1992년까지 거의 2년 간격으로 「너라고 불러 보는 조국아」, 「바람이어라」, 「있으라 하더면 가랴마는」 등 주로 대형 무용극을 공연하였다. 「너라고 불러 보는 조국아」는 “생각하는 춤에 대한 지향이 있고 환경적인 소재를 운문적인 무용 언어로 표상하려는 노력이 있다”는 말과 함께 “한국 무용, 현대 무용, 발레의 둑을 터놓음으로써 이미지네이션의 자유로운 전개를 얻고 있다”는 호평을 받기도 하였다.
1984년 2월 29일 부산 시민 회관과 5월 25일 서울 문예 회관에서 열린 손세란 창작 무용 공연은 그녀의 무용 생활 30년을 스스로 결산하는 무대였다. 이 무대에서 선보인 「망부석」은 한국과 현대 무용의 기법을 접목한 작품으로 “예술적 가치 판단을 넘어서 그녀가 기울이는 무용에의 끝없는 동경과 정열과 계속 항진하려는 신심 깊은 순례자적 편력의 한 단면을” 보여 줬다.
1986년 12월 15일 부산 시민 회관에서 있은 「있으라 하더면 가랴마는」은 “안으로 그 이야기를 성립시키기 위해 적당한 소재를 선택하고 그 소재를 주제에 의해 잘 정돈하여 알맞은 유기적 관계를 맺으면서 논리적으로 배열하여 성공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작곡 박범훈, 무대 미술 윤경모, 의상 그레타리, 가면 천재동과 김진홍, 송준영, 조영선, 김윤순 등 호화 배역들이 참여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 공연이었다.
[묘소]
경상남도 양산시 석계 공원묘원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