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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탑 미술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3004
한자 釜山塔美術館
영어의미역 Busan Top Art Gallery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지명/시설
지역 부산광역시 중구 용두산길 35-18[광복동 2가 1-2]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현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미술관
개관|개장 시기/일시 1973년 10월 11일연표보기 - 개관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79년 2월 1일 - 폐관
최초 설립지 부산 탑 미술관 - 부산광역시 중구 용두산길 35-18[광복동 2가 1-2]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동 용두산 공원에 있었던 미술관.

[개설]

부산 탑 미술관은 미술관의 불모지였던 부산의 초창기 화랑으로서 부산의 문화 예술계 거장, 한국미술협회 부산지회, 그리고 당시 유명 동인들의 전시회장으로 부산 시민 회관과 함께 명성이 높았던 곳이다. 이전에는 주로 다방에서 전시회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부산 탑 미술관 개관 이후 다수의 화랑이 들어서게 되었다.

[건립 경위]

부산 탑 미술관은 도원개발[대표 장학영]이 용두산에 부산 탑을 세우고 지상 구조를 건립하여 20년 동안 사용 후 부산시에 기부 체납한다는 용두산 개발 계획에 따라 1973년 10월 11일 개관하였다. 당시 용두산 개발을 두고 많은 논란이 빚어졌을 때 도원개발은 지상 구조물을 모두 영업장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미술관, 어린이 과학관, 수족관의 시설을 갖춰 용두산 공원을 부산의 문화 예술이 꽃필 수 있는 터전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에 예술인과 시민들은 용두산 공원 개발에 호의적으로 돌아섰다. 즉 부산 탑 미술관용두산 개발의 이슈였던 것이다.

[변천]

1973년 우흥찬, 신우회 창립전[5명]을 열었고, 1974년에는 임호, 김윤민, 임완규, 심명보, 김인환·박현기, 정원일, 서재만, 김정혜, 4회 갈마 동인전, 부산 탑 미술관 개관 1주년 기념 2회 초대전[95명], 13회 혁전[12명], 6회 부산 판화회전[6명], 6월전[김대륜, 김청정, 정건모], 요철판화회 창립전[10명 30점], 6회 공간전, 7회 후기전, 2회 세대전[6명], 13회 길동인전[11명], 2회 신우회전[7명] 등의 전시가 있었다.

1975년에는 성창경, 양철모, 김종근, 워크(WORK) 창립전[현대미술연구회, 16명], 임정기, 김종근, 이의주, 우흥찬, 한국미술청년작가회전[60명], 14회 길동인전[12명], 7회 공간전, 연미회 창립전[부산여대 재학생 6명]이 열렸다. 1976년에는 9회 알그림 미전, 김홍석, 이상규, 한창길, 부산 미협전, 15회 길동인전, 부산여대 미전, 2회 연미회전[15명]이 열렸으며, 1977년에는 7회 동백 미술전[22명], 2회 홍익전[40명], 4회 동맥전[26명], 77년도 한국미술협회 부산지회 회원전[83명]이 열렸다.

부산 탑 미술관은 1979년 1월 23일자로 부산시에 ‘용두산 공원 미술 전시관’의 용도 변경을 신청하여 미술관 대신 생물 전시관으로 바꿀 계획서를 제출하고, 1979년 2월 1일에 폐관하였다. 도원개발이 전시장의 용도 변경을 신청한 이유는 전시장 설치 이후 전시장을 이용하는 횟수가 해가 갈수록 줄어들어 사실상 미술 전시장으로서의 기능이 없어졌다는 점을 들었다.

당시 화가들은 부산 탑 미술관이 문을 연 초창기의 김창협 관장이 있을 때에는 미술관다운 움직임을 보였으나 김 관장이 물러난 1974년 이후부터는 미술관이란 이름과 시설은 있어도 운영의 묘가 전혀 없는 상태로 팽개쳐져 왔다고 지적하였다. 미술관의 운영은 작품의 수집, 매매, 화가에 대한 지원 등이 입체적으로 진행되고 투자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인데 이러한 운영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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