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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2880
한자 大衆音樂
영어의미역 Popular Music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철홍

[정의]

부산 지역에서 대중을 대상으로 대중 매체를 통해 전파되는 음악 양식.

[개설]

대중음악의 본질적 요소가 부산이라는 단어에 한정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부산이 배태하고 있는 특별한 환경과 지역적 특성이 용해된 음악적 특징들이 부산의 상징적 대중음악이 될 수는 있다. 부산은 항구 도시이며 한국의 국제적 관문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에는 대륙으로 연결되는 수탈의 관문이었고, 6·25 전쟁 때는 민족이 모였던 마지막 집결지였다. 그래서 부산의 대중음악은 서민의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녹아 있고 한편으로는 전쟁과 피난 그리고 항구와 마도로스, 수출과 바캉스, 해변과 낭만 등을 속으로 품고 있다.

대체로 음악은 작곡과 연주로 구분되며 연주는 악기의 연주와 가수의 가창으로 세분될 수 있다. 이에 부산의 상징적 의미들을 내외부적으로 용해하고 있는 작곡가와 연주가 및 가수들을 살피고 그들로부터 태어난 음악들을 더듬어 보고 또 그들이 공존의 터로 삼으며 이룩한 모임과 단체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창가 시대]

우리 대중음악의 역사가 외국 음악의 모방으로부터 시작된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초기의 창가 시대에 외국 가락에다 신시조나 애국 독립가를 붙인 노래들이 보급되었으나 부산을 상징하는 음악은 찾기가 힘들다. 그러나 윤심덕의 「사의 찬미」는 이바노비치의 「다뉴브 강의 잔물결」에 윤심덕이 가사를 붙인 것으로 현해탄을 건너다 투신한 사건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으며 당시 관부 연락선의 출발지 항구가 부산이었다는 정도의 의미는 찾을 수 있다.

[레코드 시대: 1920~1960년대]

이 땅에 축음기가 처음 소개된 것은 1880년 대동강을 통해 한국 땅을 밟은 프랑스신부에 의해서이다. 이후 1904년 이동백의 「적벽가」가 최초로 발매된다. SP 시대[Standard playing: 장시간 연주 레코드가 일반화됨에 따라 대조적으로 사용된다. 연주 시간은 25㎝판 한쪽 면이 약 3분간, 30㎝판 한쪽 면이 약 5분간이다]를 대표하여 많은 곡들이 나왔지만 1950년대 초기 부산이라는 지명을 찾을 수 있는 곡은 피난민들이 서울로 환도하면서 부산을 떠나는 마음을 그린 「이별의 부산 정거장」[호동아 작사, 박시춘 작곡]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별의 부산 정거장」은 비극적 역사에 의한 슬픔일 뿐 부산을 상징하지는 못한다.

반면 부산이 낳은 불세출의 가수 현인(玄仁)에 의해 「신라의 달밤」, 「비 내리는 고모령」, 「럭키 서울」, 「굳세어라 금순아」 등이 만들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이후 1960년에 이르러 LP 시대를 맞게 된다. 더불어 KBS 외에 1961년 MBC, 1963년 DBS, 1964년 RSC[TBC] 등의 민간 방송국에 출연하였다. 이때 백영호, 정풍송, 허영철, 천봉, 최익봉 등의 인물들이 부산과 인연을 남기고 있다. 그리고 서구 문화의 영향이 노래 속에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시기로 탱고, 맘보, 차차차, 블루스, 소야곡, 세레나데, 샹송, 카우보이, 차이나타운, 마도로스 등의 외래어가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시기였다.

1950년대 부산의 대중음악이 가장 큰 호황을 누린 것은 부산이 6·25 전쟁으로 임시 수도가 되면서부터이다. 당시 무수한 음악인들이 부산을 거쳐 갔다. 박시춘은 국방부 정훈국 제2소대장을 맡아 정훈 활동을 하다가 1952년 가을 부산에 들어오면서 「삼다도 소식」[황금심 노래], 「등잔불 소식」[박달자 노래], 「승리 부기」[신카나리아 노래], 「슈사인 보이」[박단마 노래] 등을 만들어 피난민들에게 널리 불리게 하였다.

「이별의 부산 정거장」으로 유명한 남인수(南仁樹)는 제주도 훈련소에서 돌아온 뒤 부산에서 군소 악극단을 매수해서 특별 출연을 조건으로 극장 공연을 하였다. 「꿈꾸는 백마강」으로 친숙한 이인권은 부산에서 악극단 가협의 공연 작품 가극 「꽃수레」를 작곡하였다.

시나리오 작가·악극 작가로 유명한 김화랑은 1952년 부산으로 들어와서 부인 신카나리아와 함께 악극단 호화선을 창립하여 부산 극장에서 「굳세어라 금순아」를 공연하였다. 이후 「밤에 우는 새」, 「낙동강 칠백 리」, 「연애할 시간도 없다」, 「혈투」 등으로 부산의 피난민들의 슬픔을 잊게 하였다. 이를 따른 악극단원으로 주선태, 이근배, 이영일, 명진, 백설희 등이 있었다.

한편 무엇보다 6·25 전쟁 당시 부산 대중가요계에서 기억해야 될 인물은 한복남(韓福男)이다. 「빈대떡 신사」로 현인의 인기에 도전하였던 한복남은 전쟁이 일어나자 부산으로 왔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녹음실에서 첫 취입곡인 「홍콩 아가씨」[금사향 노래], 「물레방아 도는 내력」[박재홍 노래]을 레코드 녹음하였다. 이 레코드를 악기점에 팔면서 도미노레코드사가 탄생하였다. 뒤를 이어 「페르샤 왕자」, 「백마강」을 작곡하여 부산 시내를 대중가요의 세계로 몰아갔다. 한복남의 도미도레코드가 주목을 끌자 임정수는 현 부산광역시 서구 남부민동에 미도파레코드를 설립하였고 이것이 나중에 지구레코드로 발전하였다.

레코드 시대는 악극단 공연이 지배적이었다. 그것은 악극이라는 대중적인 매체가 피난민들의 보편적인 정서와 잘 맞았고, 피난살이라는 현실과 거리감을 가진 창극의 향수층이 점차 악극 쪽으로 옮겨 왔기 때문이다. 이 시기 부산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악극단은 현대가극단, 백조가극단, 무궁화악극단, 은방울악극단, 김해송악단의 가협, 반도가극단, 대도회악극단, 김봉명악단 등이다.

[군화와 히피의 시대: 1960년대]

3·15 부정 선거, 4·19, 5·16 등을 겪는 격동의 시기이다. 이런 와중에도 미 8군 쇼라는 연예 창구가 열린다. 한명숙의 「노란 샤스 입은 사나이」, 현미의 「밤안개」, 최희준의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 「하숙생」등의 곡들이 탄생하던 시기이다. 또한 가요에 중창단의 활약이 돋보이던 시기이기도 하다. 김씨스터즈, 블루벨즈, 펄씨스터즈, 곧 이어 청년 문화의 표상이 되는 트윈폴리오 등이 있다. 비로소 대중음악 종사자들의 이익 집단이 결성되는 시기로 가수 협회, 대중음악 협회, 레코드 작가 협회, 공연 단체 협회, 한국연예예술인협회 등이 만들어진다. 부산의 경우는 전국예술단체문화총연합회 경남지부로 출발하여 1963년 부산직할시로 승격하면서 전국예술단체문화총연합회 부산지부로 분리된다. 내부적으로 1975년도에 가수 분과가 창립되었다. 2012년 현재 가요 창작, 무용, 연기, 연주, IT 특별 위원회 등의 분과가 있다.

[분야별 개성 시대: 1970년대]

1970년대는 다양한 분야가 소개되던 시기로 트롯의 황금시대를 맞게 되는데 이미자의 등장과 남진, 나훈아로 이어지고 현철과 설운도, 작곡가 정풍송 등이 매우 활발한 활동을 보인다. 이들 중 나훈아와 현철, 설운도 등은 부산이 낳은 가수들이며 정풍송은 밀양이 고향이지만 부산이 고향과 다름 아니다. 반면 이지 리스닝 계열[경음악]의 패티김도 빼놓을 수 없는 가수로 1970년대의 다양성에 한 몫을 하였다.

동시에 서구로부터의 트위스트가 유행하였고 베트남 전쟁 등과 동시에 반전 운동과 정치적 안티 운동이 접목된 포크와 록이 유행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룹사운드로 부산과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 중 대표적인 인물이 조용필이며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재일 동포 고국 방문단과 시기를 같이하여 한일 양국에서 공전의 히트를 하였다. 그리고 미 8군 무대를 벗어난 재즈가 서서히 보급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반면 대학을 중심으로 대중음악이 그들의 문화가 되는 시기로 대학 가요제가 처음 생겼다. 이 때 부산대학교의 중창 팀 썰물에 의한 「밀려오는 파도 소리에」가 제2회 MBC 대학 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비디오 시대: 1980~2000]

서울시스터즈, 소방차 등과 같은 댄싱 그룹이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이며 춤과 음악이 본격적으로 조우하고 대표적 인물로 김추자를 빼놓을 수 없다. 미국 브롱크스의 하류 문화가 기존의 문화로 편입되며 랩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필두로 터보, 노이즈, 룰라, Ref 등을 랩의 선두주자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부산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유도할 만한 특징은 찾기가 쉽지 않다.

1990년대 초에 나온 「부산 갈매기」는 프로 야구 롯데 자이언츠 구단의 주제가처럼 사용되고 있지만 부산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노래이기도 하다. 또 순수 부산 사람들에 의해 제작된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가 1986년에 선보이며 지역적인 문화 역량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허영철이 초대 회장을 지낸 부산가요작곡가협회에 의해 1991년에 제1회 오륙도 창작 가요제가 열린 후[1994년부터 2002년까지는 대회가 열리지 않음] 현재까지 부산을 대표하는 가요 창작의 무대로 이어져 오고 있다. 그리고 대중음악 교육이 드디어 제도권 내로 진입을 하게 된다. 1994년 부산예술학교[현 부산예술대학교]에 대중음악 교육을 목표로 실용음악과가 개설되고 이어서 1999년 4년제 동아대학교로 확대되어 실용 음악 교육이 자리 잡는다.

[디지털 멀티미디어 시대: 2000~현재]

아이돌 시대, 한류 시대, K-POP의 시대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 시기이다. 소녀시대와 카라와 원더걸스를 필두로 한국의 대중음악이 세계의 대중음악으로 우뚝 서는 문화 혁명적 시기이다. 부산을 연고로 하는 아이돌은 2PM의 우영과 창민, 씨엔블루의 용화, 2ne1의 산다라박 등이 있다. 문화의 다원화에 의해 음악의 여러 장르가 전국적 축제 분위기로 증폭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부산 바다 축제의 주요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으면서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게 된다. 또 부산 출신의 가수 현인을 기리며 목포의 난영 가요제와 진주의 남인수 가요제와 함께 국내 3대 가요제로 자리매김하는 현인 가요제가 2005년부터 부산의 송도 해수욕장에서 열리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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