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28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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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文得 |
영어음역 | Gang Mundeuk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오진호 |
[정의]
현대 부산에서 활동한 가야금 연주자.
[활동 사항]
강문득(姜文得)[1945~2003]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원서동에서 강장원과 임유앵 사이에서 2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부모는 모두 판소리 명창이었다. 특히 아버지 강장원은 국립국악원에서 후학을 지도하였고, 이모인 임춘앵은 국극의 여왕으로 불렸다. 4살 때 왼쪽 다리에 장애가 생겨 평생 다리를 절었다. 5세부터는 임유앵이 소속된 국극단 악사인 김병호(金炳昊)에게 가야금을 배웠다. 경기중학교를 다니다 그만두고 국립국악원 국악양성소에 입학하였다.
1967년 제1회 5·16 민족 음악상 기악부 대통령상을 수상하였을 때, 대통령이 소원을 묻자 다리를 고쳐 달라고 하였다고 한다. 대통령의 지시로 국립의료원에서 다리 수술을 받았다. 1962년부터 1968년까지 부산에서 중요한 강태홍류(姜太弘類) 가야금 산조 전수자인 원옥화(元玉花)[1928~?]에게 사사하였다.
1973년부터는 부산에 정착하여 활동하였다. 38살 때인 1983년 부산대학교 국악과에 입학한 뒤 1984년 같은 과 정혜자와 혼인하였고 1987년 2월 졸업하였다. 1978년 9월 8일 국립국악원에서 첫 독주회 이후 부산 문화 회관 개관 기념 공연 등 많은 공연을 하였다. 1988년 6월 17일 국립국악원에서 제94회 무형 문화재 정기 공연-강문득 가야금 발표회를 개최하였다. 2003년 7월 9일 지병으로 사망하였다.
[묘소]
경상남도 양산시 신불산 공원 묘원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63년 신인 예술상[국악 부문] 특상, 1967년 5·16 민족 음악상 기악부 대통령상, 1991년 KBS 국악 대상[연주 부문] 등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