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2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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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釜山港- |
영어의미역 | Come Back on Busan Harbor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작품/음악·공연 작품 및 영상물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형찬 |
[정의]
부산항을 통해 떠나간 형제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노래한 대중가요.
[구성]
1절은 가족을 떠나보내고 한국에 남은 사람이 떠난 가족을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2절은 한국을 떠났던 가족이 고국에 돌아와 느끼는 상념을 노래한다. 작곡가는 황선우이고 작사가는 김성술이다.
[내용]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원곡은 1971년 통영 출신 가수 김해일이 취입한 「돌아와요 충무항에」이다. 1971년 김해일 사망 후, 1972년 조용필의 첫 음반에 통기타 반주로 수록하였으나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1976년 부산항의 이별을 내용으로 일부 가사를 바꾼 후 조용필 음반에 수록되어 인기를 얻었다.
「돌아와요 충무항에」의 가사 1절은 “꽃피는 미륵산에 봄이 왔건만/ 님 떠난 충무항은 갈매기만 슬피우네/ 세병관 둥근 기둥 기대여 서서/ 목메어 불러 봐도 소식 없는 그 사람/ 돌아와요 충무항에 야속한 내 님아”이다. 2절은 “무학새 슬피 우는 한산도 달밤에/ 통통배 줄을 지어 웃음꽃에 잘도 가네/ 무정한 부산 배는 님 실어 가고/ 소리쳐 불러 봐도 간 곳 없는 그 사람/ 돌아와요 충무항에 야속한 내 님아”이다.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가사 1절은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 우네/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목메어 불러 봐도 대답 없는 내 형제여/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이다. 2절은 “가고파 목이 메어 부르던 이 거리는/ 그리워서 해매이던 긴긴날의 꿈이었지/ 언제나 말이 없는 저 물결들도/ 부딪쳐 슬퍼하며 가는 길을 막았었지/ 돌아왔다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이다.
[의의와 평가]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1970년대 이후 부산을 대표하는 곡으로 자리 잡았다. 재일 동포의 모국 방문이 이어진 시대 상황을 반영한 곡으로 전국적인 인기를 얻게 되면서 조용필이 스타로 떠오르게 된 곡이다. 음악적으로 트로트와 록이 결합한 소위 트로트 록의 양식을 취하고 있으며 이 곡을 시작으로 1970년대 후반에 트로트 록이 대세를 이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