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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용복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0034
한자 安龍福傳
영어의미역 Story of An Yongbok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훈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전 문학|전
작가 원중거
저자 생년 시기/일시 1719년연표보기 - 원중거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790년연표보기 - 원중거 사망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763년 이후 - 계미 통신사 사행 이후
편찬|간행 시기/일시 1763년 이후 - 계미 통신사 사행 이후

[정의]

1763년 이후 통신사행의 서기를 했던 원중거안용복의 공적을 기술한 전.

[개설]

「안용복전」은 조선 후기의 문인 원중거(元重擧)[1719~1790]가 울릉도 영토 문제를 해결한 동래 출신 수군 안용복(安龍福)의 활약상을 기술한 전(傳)이다. 1763년 계미 통신사 서기로 참여한 원중거는 에도[江戶]에 다녀온 후, 일기체 통신사 행록인 『승사록(乘槎錄)』과 함께 일본에 관한 백과사전적 저서인 『화국지(和國志)』를 저술하였다. 「안용복전」은 『화국지』의 권3 인(人)에 수록되어 있다.

안용복은 조선 후기 한일 관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많은 지식인들이 그를 주목하고 다수의 관련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이들 중 대부분이 영토 문제와 관련하여 서술하는 가운데 부분적으로 기술되어 있어 안용복이란 인물의 일생을 따로 기술한 작품은 몇 편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원중거가 지은 「안용복전」은 몇 안 되는 독립된 전 작품이며, 가장 문학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내용]

「안용복전」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 부분은 안용복의 출생, 성격 등과 관련한 인물 소개이다. 작품에 따르면 안용복은 동래 어부 집안에서 출생하였으며, 장성한 뒤에는 동래 수군에서 함선의 노를 젓는 직책을 맡은 능로군(能櫓軍)에 있으면서 부지런히 고기잡이를 하여 살림이 넉넉하였다. 그는 하급 무관임에도 한문을 알고, 일본어에 능통하였으며, 성품 또한 강직하였다.

그 다음 이어지는 내용은 울릉도 쟁변과 관련하여 벌어지는 사건인데, 작품에서 가장 비중 있게 다루어지고 있는 부분이다. 안용복이 1693년 울릉도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중, 왜인들이 울릉도에 침범하여 도리어 안용복을 자기 땅에 침범하였다고 하며 대마도로 끌고 가는 사건이 발생한다. 일본에 붙잡혀 간 안용복은 이에 맞서 대마도 태수와 백기주(伯耆州) 태수에게 울릉도가 조선의 땅임을 적극 주장하고 마침내 설복시킨다. 백기주 태수는 이 사실을 관백에게 보고하여 안용복의 요구대로 서계를 작성하여 돌려보냈으나, 돌아오는 도중 비전주(肥前州) 태수가 서계를 빼앗고 안용복을 대마도로 보냈다. 대마도에 구금된 안용복은 몰래 동래 고향집에 편지를 보냈으며, 동래부에서도 이 사실을 알고 관왜(館倭)에게 말하여 겨우 풀려났다. 그는 돌아오자마자 동래 부사에게 대마도인의 간계와 울릉도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였으나 동래 부사는 듣지 않았고, 차왜의 공갈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그러자 안용복은 직접 울산으로 가서 그곳 어부들을 회유해 울릉도로 가서 군복으로 갈아입고 이곳을 침범하는 왜인들을 쫓아냈다. 내친김에 그는 일본 백기주로 가서 스스로 울릉도 감세관이라 칭하면서 태수를 만나 대마도인의 울릉도 침범을 강력히 금지해 줄 것을 요구하고, 이를 관백에게 알려 줄 것을 요청하였다. 백기주 태수가 이에 응하여 강호로 갔을 때 마침 대마도 태수의 아버지가 있어 이 사실을 알고 간곡히 만류하는 바람에 비록 관백에게 알리지는 않았지만 대신 대마도 태수로부터 다시는 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안용복이 귀국하여 이 일을 관청에 보고하고, 조정에서도 이 일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대마도 태수가 동래부에 편지를 보내 다시는 울릉도에 사람을 보내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이에 대마도인이 원한을 품고 다시 분쟁을 일으키자 조정에서는 이를 모두 안용복의 책임으로 돌려 그를 참수하려 하였다. 다행히 윤지완과 남구만 등의 변호로 그는 겨우 참수형을 면하고, 대신 영동 지방에 귀양 가서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여기서 전개된 사건과 주인공의 활약상을 통해 안용복은 조정에서도 해결하지 못하는 영토 문제를 용감하게 해결하는 애국적 영웅으로 형상화되었다.

마지막은 원중거의 평이다. 원중거는 일본인을 내지인[본토인]과 대마도인으로 나누고, 내지인은 대마도인처럼 간교하지 않은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로 대마도인만 보아온 터라 일본의 풍속이 모두 그런 것이라 오해하고 있다고 하였다. 곧 본토인은 교활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마도인의 이런 악행이 멈춘 것은 오로지 미천한 신분으로 지혜와 용기를 가지고 일본 본토에 널리 알려 해결하려고 한 안용복의 영웅적 활약 덕분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글을 마무리하였다.

[특징]

「안용복전」은 조선 후기 울릉도를 둘러싼 한·일 간의 영토 문제를 중심으로 다룬 작품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안용복이라는 인물을 생동감 있게 그린 것이 큰 특징이다.

작품은 평면적 서술로 진행되는 일반적인 전과 달리 생동감 있는 대화 장면을 직접 제시하면서 입전 인물을 형상화하고자 하였다. 특히 일본으로 건너간 안용복과 백기도주, 대마도주의 논쟁에 관한 직접 대화 장면은 안용복의 기개와 설득력을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는 대목이다.

또한 작품은 허구적 장면을 통해 안용복의 인물 성격을 더욱 생동감 있게 형상화한다. 안용복이 울산에 가서 그곳 어부들을 속여 울릉도로 간 뒤 그들을 회유하여 함께 일본으로 가는 장면은 그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대목이다. 그런데도 원중거는 이를 소설적 필치로 형상화하여 작품의 생동감을 더한 것은 물론, 입전 인물의 성격을 보다 생생하게 그려 내고 있다.

[의의와 평가]

원중거는 미천한 신분이었던 동래 출신 수군 안용복이 조선 후기 울릉도를 둘러싼 한·일 간의 갈등을 홀로 해결하는 영웅적인 활약상에 주목하여 그를 입전하여 기록을 남겼다. 「안용복전」은 조선 후기 애국적 영웅에 대한 문학적 형상화라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또한 이를 통해 무엇보다 오늘날 독도 문제의 역사성을 알 수 있음은 물론, 독도 문제의 해결을 위한 방향을 모색하는 데 있어 소중한 지혜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점이 「안용복전」의 사료적 가치와 문학적 가치를 평가하는 논거가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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