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00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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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宋東萊傳 |
영어의미역 | Story of Song Dongnae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양리 |
[정의]
조선 후기 신흠이 임진왜란 때에 순절한 동래 부사 송상현을 기리며 지은 전.
[개설]
「송동래전(宋東萊傳)」은 조선 후기의 문신 신흠(申欽)[1566~1628]이 임진왜란 당시 동래 부사로 부산성을 지키다 순절한 송상현(宋象賢)[1551~1592]을 기리며 지은 인물전이다. 신흠은 송상현의 전에 합하여 그의 첩이었던 김섬(金蟾)과 이양녀(李良女), 그를 수행하다 함께 죽은 신여로(申汝櫓)에 관해서도 짤막하게 기록을 남기고 있다. 「송동래전」은 신흠의 문집인 『상촌집』 31권 ‘잡저(雜著)’에 수록되어 있다.
[구성]
「송동래전」은 송상현의 가문과 이력을 간략하게 소개한 도입부와 임진왜란 당시 동래 부사로 순절한 상황을 상세히 묘사한 전개부, 그의 죽음 이후 사람들이 그를 기렸다는 내용을 담은 결말부, 그의 첩인 김섬과 이양녀, 수행자인 신여로에 관한 짧은 전(傳), 그리고 논찬부(論贊部)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
송동래의 이름은 상현, 자는 덕구(德求)이며, 여산(礪山)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남다른 재간을 지녔는데, 20세에 성균관에 들어가고 6년이 지나 급제하였다. 장수의 재질이 있어 오래 변방에 재직했다가 마침내 동래 부사가 되었다. 다음 해 왜적이 쳐들어 와 장차 성이 함락되려 하자 공은 갑옷 위에 조복(朝服)을 입고 호상(胡床)에 걸터앉아 꼼작도 하지 않았다. 마침 적 가운데 평조익(平調益)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일찍이 조선을 왕래하면서 공에게 은혜를 입은 바 있었다. 이때에 와서 그가 공의 옷깃을 잡아 피신하도록 권하였으나 공은 오히려 호상에서 내려와 북쪽을 향해 절을 하고 부친 부흥(復興)에게 하직의 편지를 쓰고는 마침내 적에게 해를 입었다. 조금 후 평의지(平義智)와 현소(玄蘇) 등이 이르러 공의 죽음을 듣고는 한탄하고 애석해 하며 공을 살해한 자를 죽이고, 공의 시신과 살해당한 공의 첩을 동문 밖에 장사 지내고 나무를 세워 표지하였다.
갑오년에 경상 절도사 김응서(金應瑞)가 적장 가등청정에게 사정을 듣고 조정에 아뢰자, 조정에서 공에게 이조 판서의 벼슬을 증직하고 아들에게 벼슬을 내렸다. 을미년에 그 집안사람이 상소하여 고향으로 장지를 옮기기를 청하자, 왕이 김응서에게 하교하여 그로 하여금 가족들과 함께 적지에서 관을 메고 나와 청주 가포곡(加布谷)에 묻도록 하였다. 공의 관이 적중(賊中)에 있을 때 동래 사람 매동(邁同)이 공의 제삿날과 명절 때마다 매번 성대히 제사를 지냈는데, 후에 공의 아우를 만나 일의 전말을 고하며 눈물을 흘렸다. 공을 반장(返葬)할 때 울며 따라가 송별한 사람이 70여인이 되었으며, 평의지는 길에서 공의 관을 만나자 말에서 내려 길을 피해 전송하였다. 이 당시 상국(相國) 이항복(李恒福)이 접반사로 의령(宜寧)에 머물러 있다가 찾아가 염습과 관을 바꾸고 친히 제문을 지어 제사를 지냈다. 을사년에 윤훤이 동래 부사가 되어 사당을 세우고 공을 향사하였다.
김섬은 함흥 기생으로 13세 때 공을 따라 동래에 왔다. 사태가 다급해져 공이 조복을 가져가자 김섬은 공이 장차 죽으려 한다는 것을 알고 다급히 관아의 담을 넘어 공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이에 김섬도 적에게 사로잡혔는데 3일 동안 적들을 꾸짖다가 마침내 살해당했다. 적들이 그 절개를 기특히 여겨 공과 함께 장사 지냈다.
이양녀 역시 공의 첩이다. 공이 적들이 쳐들어온다는 말을 듣고 서울로 보냈는데, 길을 떠난 지 하루 만에 성이 함락되었다는 것을 듣고는 공과 함께 죽고자 동래로 되돌아왔다가 적에게 사로잡혀 바다를 건넜다. 수길(秀吉)이 범하려 하자 목숨을 걸고 거절했다. 이에 수길이 그를 의롭게 여겨 놓아주어 마침내 절개를 보전하고 귀국했다.
신여로는 서얼로 공을 따라 동래에 왔는데, 공이 그의 모친이 살아 있어 적에게 혹시 피해를 당할까 염려하여 돌려보냈다. 여로는 돌아가는 도중에 적이 부산을 함락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마침내 공에게 돌아와 함께 죽었다.
예로부터 세상이 태평할 적에 권세를 쥐고 있던 사람은 난리가 생기면 산속으로 숨어 제 몸과 처자를 보존하지 않는 자가 없었고, 병마를 관장한 자는 무서워 흩어지지 않는 자가 없었다. 그런데 공은 수령으로 죽음을 알기를 자기 집에 돌아가도록 쉽게 하였다. 공의 몸은 나라를 위해 죽었으나 공을 따라 죽은 자는 공을 위해 죽었으니, 이는 공의 풍취가 그렇게 하도록 자극한 것이다. 저 개돼지와 같은 적들도 존경을 하였으니 참으로 특이한 일이다.
[특징]
일반적으로 전은 인물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서술된다. 그러나 「송동래전」의 경우에는 송상현이 순절하는 순간에만 주목하여 순절 당시의 상황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또한 이항복이 지은 제문의 전체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점과, 그와 함께 순절한 두 명의 첩과 부관에 대한 전을 함께 수록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는 송상현의 의로움과 충절을 부각시키기 위한 작가의 의도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송동래전」은 송상현의 순절 당시의 상황과 동래 지역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 내고 있다. 또한 매동, 김섬, 이양녀, 신여로 등의 일화를 함께 전하면서 임진왜란 당시 동래 지역 사람들의 충절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