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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남학교조합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7588
한자 龍南學校組合
영어공식명칭 Yongnam School Cooperatives
분야 문화·교육/교육,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수영구|남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최두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학교 조합
설립 시기/일시 1914년 2월 23일연표보기 - 설립
최초 설립지 용남심상소학교 -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동래 지역에 있었던 남면 관할 일본인 학교 연합 단체.

[개설]

1909년 12월 통감부령으로 조선 거주 일본인의 교육에 관한 사무 처리를 목적으로 「학교 조합령」이 발포되었다. 이때 기존 일본인회 대다수는 학교 조합으로 그 조직을 변경하게 되었다. 합병 당시 학교의 설치와 운영은 거류민단 학교 조합 일본인회 거류민 총대역장 등이 할 수 있었는데 1912년 4월 공립 학교 규칙의 실시로 학교의 설립과 운영은 거류민단 또는 학교 조합으로 한정되었다.

「학교 조합령」은 1913년 제령 제8호로 개정되었으며, 부령으로 동 시행 규칙을 정하여 1914년 4월 1일 부제 실시와 동시에 시행되었다. 이 개정령으로 학교 조합의 사업에서 위생 사무를 분리하여 본부에 이관하였고 학교 조합의 사업은 교육 사업에만 국한시켰다. 학교 조합은 공립 소학교와 공립 중학교, 공립 고등 여학교, 공립 실업 학교를 설립 경영할 수 있었다.

부산학교조합의 1921년도 조합 경영의 학교는 상업 학교 1, 고등 여학교 1, 소학교 7, 유치원 1이다. 부산학교조합 이외의 부산 지역 학교 조합 경영 학교 현황은 1922년 기준으로 구포학교조합[삼류심상소학교, 구포심상고등학교], 동래학교조합[동래심상고등학교], 다대포학교조합[다대포심상소학교], 하단학교조합[하단심상소학교], 용남학교조합[용남심상소학교], 해운대학교조합[해운대심상소학교]이 설립되어 있었다.

[설립 목적]

동래군 남면 지역[현 수영구, 남구]에 거주하는 일본인 자제들을 교육시킬 목적으로 조직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용남학교조합은 1914년 2월 23일 총독부 허가로 조합이 설립되었고, 조합의 구역은 동래군 남면 내 망미리, 광안리, 남수리, 민락리, 남천리서면대연리, 용호리, 용당리, 감만리, 우암리였다. 학교 조합은 기본적으로 일본인 학교가 가입하였다. 따라서 조선인은 조합에 소속된 학교에 입학하기가 어려웠다. 즉 학교 조합은 일본인을 중심으로 운영되어 조선인이 입학하기에는 조건이 까다로웠으며 일정 금액의 기부금마저 요구하였다.

용남학교조합대연리[현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에 있던 용남심상소학교를 경영하였다. 1915년 3월 야마구치현[山口縣] 이주 어촌인 동래군 용당동에 설립하였고, 60여 호 주민 자제의 교육을 위해 국고 보조금 150엔, 어촌 보조비 및 촌내의 호별할로 조성한 900엔의 예산으로 설립하여 1915년 4월에 개교하였다. 1922년 당시 학생 수는 34명이었고, 조합 예산은 2,324엔으로 1호당 8.60엔을 부담하였다. 1932년의 관리자는 산기희우위문(山崎喜右衛門)[의원], 전중정일(田中貞一), 암야웅치(岩野雄治), 강기영웅(岡崎英雄), 삼학귀(森鶴龜), 포야안태랑(布野安太郞) 등이다.

[의의와 평가]

학교 조합은 기본적으로 재조선 일본인의 교육을 효율적으로 전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였다. 일본은 조선 내에서의 일본인 거주 지역에 학교 조합을 설립함으로써 일본인을 위한 교육 기관의 설립을 용이하게 하였고 재정적 안정을 꾀하였다. 결국 이러한 학교 조합 제도는 식민자였던 일본인과 피식민자였던 조선인을 교육적으로 차별한 제도적 장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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