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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립대학설립기성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7299
한자 民立大學設立期成會
분야 문화·교육/교육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로 134[동광동 3가 1]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배병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회단체
설립자 김병규
설립 시기/일시 1945년 10월 9일연표보기 - 설립
해체 시기/일시 1946년 5월 전후연표보기 - 해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46년 5월 15일 - 부산대학교 개교
최초 설립지 민립대학설립기성회 -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 3가 1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 3가에 있었던 민립 대학 설립 관련 기성회.

[설립 목적]

개항 이후 신식 교육에 대한 민중의 열망은 매우 강렬하였으며, 이는 일제 강점기 동안의 식민지 차별 교육을 통해 더욱 절실해졌다. 당시 조선인에게 초등 교육 외 고등 교육의 기회는 제한적이었고, 그나마도 실업 교육에 치중된 것이었다. 따라서 해방 이후 고등 교육에 대한 부산 시민의 요구는 뜨거울 수밖에 없었으며, 이는 시민 스스로의 힘에 의한 대학 설립 추진 운동으로 나타났다. 민립대학설립기성회 역시 이러한 움직임 중 하나로, 일제 강점기 민립 대학 설립 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뜻을 이루지 못했던 부산 지역 인사들에 의해 조직되어 민간의 모금으로 대학을 설립하고자 하였다.

[변천]

1945년 10월 9일 오후 1시 도청 회의실에서 부산 시내 유지가 집합하여 민립대학설립기성회 발기인회를 열어 기성회를 조직하고, 위원장 김병규(金秉圭), 부위원장 서상환(徐相煥)·김동산(金東山), 총무부장 김칠성(金七星), 재무부장 전성호 등을 임원으로 선출하였다. 또 상임 위원 14명, 각 부·군 유력자 등 70여 명으로 구성된 보통 위원도 각각 선정하였다. 그 외 윤상은, 배인환, 김찬성, 홍순종 등 군정 경상남도 관료와 지역 유지들도 참여하였다. 사무실 간판은 부산시 중구 동광동 3가 1번지의 김자장상회에 내걸었다. 이상과 같이 조직된 민립대학설립기성회는 이후 국립 대학 설립 안이 제기되자 이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였고, 1946년 5월 국립 부산대학교의 개교 전후로 해체된 것으로 짐작된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민립대학설립기성회 조직 후 가장 먼저 착수한 작업은 대학 설립을 위한 자금 모집이었다. 개선 후 위원장 배인환, 부위원장 김찬성, 상근 간사 구병권 등은 일제가 강제 징발했다가 조선중공업주식회사 창고에 방치해 둔 유기[놋그릇]를 경상남도 관재청 수석 통역관 홍순종의 후원으로 불하받아 처분하여 80만 원을 확보하였다. 그러나 재단 설립을 위해 적산 카시이[香椎] 어장을 불하받으려던 계획이 좌절되면서 기성회의 활동도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부산에는 이러한 민립 대학 설립 계획과 함께 사립 대학인 남선대학 설립 계획도 추진되고 있었는데, 한 지역 내에 2개 대학이 동시에 개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여론이 높았다. 이에 1945년 10월 중순경 경상남도 내무부 학무과장 윤인구는 부산 시내 대학 설립 단체를 통합하여 도립 대학을 설립하는 계획을 추진하고자 하였으며, 이후 국립 대학 설립 안으로 변경되었다.

1945년 12월 하순 각 대학설립기성회의 간부, 즉 민립대학설립기성회의 김동산, 남선대학설립기성회김길창, 음식업조합이 준비하고 있던 대학설립기성회의 문병조, 그리고 일제 강점기 초량상업학교 설립자이자 해방 후 경상남도 교육 고문으로 있던 김재준 등이 참석하여 경상남도 당국의 무조건 통합론에 전폭 찬성하고, 각 기성회의 통합 업무는 윤인구에 일임하기로 하였다.

1946년 초 남선대학설립기성회가 입장을 바꾸어 독자적으로 대학 설립에 나서면서 대열에서 이탈하였으나, 타 기성회의 협조로 도 당국의 각 대학 설립 기성회 통합론과 국립 대학 설립 안은 그대로 추진되었다. 특히 민립대학설립기성회는 종전의 유기 처분금 80만 원과 자동차 1대 등 그 재원을 도청에 헌납하면서 국립 대학의 설립에 적극 협조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1946년 5월 15일 국립 부산대학교가 개교하였다. 윤인구는 베커 총장과 유억겸 문교부장에게 건의하여 민립대학설립기성회 부회장 김찬성을 이 학교 사무국장으로 임명케 하였는데, 이는 기성회의 노력이 부산대학교 창립으로 이어졌음을 인정한 것이다.

[현황]

민립대학설립기성회의 활동 결과물인 국립 부산대학교는 2012년 현재 개교 66주년의 역사에 19만 명의 동문을 배출한 부산·경남 지역의 주요 대학으로 자리 잡았다.

[의의와 평가]

민립대학설립기성회의 활동은 해방 직후 부산 시민의 고등 교육에 대한 열망이 반영된 것으로, 일제 강점기의 좌절을 극복하고 결국 국립 부산대학교의 설립으로 귀결되었다는 점에서 부산 지역사와 교육사적으로 큰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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