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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서화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7234
한자 東明書畵院
영어의미역 Dongmyeong Seohwawon[Paintings and Calligraphics Works Institute]
분야 문화·교육/교육,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중앙로 19-1[신창동 1가 6]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현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서예 학원
설립자 김광업|오제봉|김홍경
설립 시기/일시 1955년연표보기 - 설립
최초 설립지 동명서화원 -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중앙로 19-1[신창동 1가 6]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중구 신창동 1가에 있었던 부산 지역 최초의 서예학원.

[설립 목적]

1955년 당시 안과 의사였던 운여 김광업, 청남 오제봉, 그리고 대각사(大覺寺) 주지였던 맥문 김홍경 등 3명 정도가 서예의 대가로 알려져 있었을 뿐, 부산 지역은 서예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이에 김광업오제봉, 김홍경이 서예의 후진을 양성하고자 뜻을 모아 동명서화원을 설립하였다.

[변천]

1955년 겨울에 부산시 중구 신창동에 있는 대각사 내에서 동명서화원으로 개업하였다. 서예의 불모지를 개척하겠다는 목적도 있었지만, 김광업오제봉을 부산 지역에 정착시키기 위한 것도 있었다. 김광업오제봉, 김홍경이 중심이 되어 동명서화원을 운영하였으며, 문을 연 지 1개월도 채 못 되어 40여 명의 수강생이 등록하는 등 성황을 이루었다.

학원 명성이 나자 전국의 유명 예술가들이 찾아들었다. 특히 우리 시대 최고의 선지식의 한 사람이자 불화의 일인자로 칭송되는 부산 선주산방(善柱山房)의 불모(佛母) 석정(石鼎)[1928~]과 김광업의 만남이 바로 동명서화원에서 이루어졌다. 동명서화원은 3년 동안 오제봉이 터를 잘 닦은 뒤 원장직을 조광제에게 넘겨주었으며, 그 뒤의 흔적은 알 수 없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동명서화원은 개업 이래 많은 서예인을 양성하였다. 오제봉은 서예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하여 학생들에게 글씨를 가르치는 틈틈이 시조창도 들려주었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노트를 가져오도록 하여 일일이 ‘수신제가(修身齊家)’, ‘인격 도야’ 같은 글귀를 적어 주었다. 학생들이 말뜻을 새기면서 글씨 쓰는 공부에 익숙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중견 서예인으로 일가를 이룬 제자들로는 황채우와 이성조, 김종문, 이상문이 있다.

[의의와 평가]

동명서화원은 부산 지역에 서예 붐을 일으키는 기폭제 역할을 하였으며, 또한 많은 서예인 배출의 산실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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