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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부 수면 사립노동야학교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7227
한자 東萊府首面私立勞動夜學校
분야 문화·교육/교육,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형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노동 야학교
설립자 김병규|김우영|추봉찬
설립 시기/일시 1908년 6월연표보기 - 설립
최초 설립지 동래부 수면 사립노동야학교 - 부산광역시 동래구

[정의]

개항기 부산 동래 지역에 있었던 노동 야학.

[설립 목적]

노동자에게 근대 교육 보급을 통하여 민지(民智) 계발을 도모하는 동시에 사회적인 구성원으로서 사회적인 책무를 일깨우는 데 있었다.

[변천]

을사늑약 이후 국망(國亡)에 대한 위기의식은 계몽 운동 활성화로 귀결되었다. 동래부에도 대한자강회·대한협회 지회가 설립되는 가운데 사립 학교 설립 운동과 야학 운동이 확산되는 계기였다.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 변화는 동래부 수면 사립노동야학교 설립으로 이어졌다. 문맹 퇴치를 통한 현실 인식 심화는 모순된 난관을 극복·타개하는 밑거름이었다.

동래부 수면 사립노동야학교는 1908년 6월 주요 발기인 김병규(金秉圭)·김우영(金雨英)·오봉찬(吳鳳贊) 등으로 설립되었다. 노동 야학에 대한 기부금이 답지하자, 발기인과 교직원은 부설로 측량속성과를 설치하여 주·야학으로 운영하였다. 이는 「산림령」 시행에 따른 개인 자산을 보호하기 위한 일환이었다. 측량과 운영은 근대 교육에 대한 관심을 확대시키는 주요한 계기였다. 1909년 1월 초 현재 교직원은 교장 이정렬(李楨烈), 교감 오봉근(吳奉根), 학감 송헌기(宋憲基), 감독 김종섭(金鍾涉)·강정렬(姜楨律) 등으로 재학생은 67명에 달했다. 의연금도 483원 50전이나 한꺼번에 모금되었다. 폐교 시기는 알 수 없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보통 학교 교과 과정 중 한글·산술·습자·창가(唱歌) 등 주요 교과목을 중심으로 야간을 이용해 교육 활동에 주력하였다. 창가는 시대 변화상을 각성시키는 요인 중 하나였다. 의연금 기부는 주민들에게 사회적인 의무로서 인식되었다.

[의의와 평가]

동래부 수면 사립노동야학교는 부산 지역 노동자에게 근대 교육을 보급·확산시키는 등 사회적인 존재로서 거듭날 수 있는 에너지원이었다. 동시에 노동에 대한 신성한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민족 해방 운동의 주력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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