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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862
한자 興國寺
영어의미역 Heungguksa Temple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부산광역시 강서구 허왕후길 182[지사동 478]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원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찰
중수|중창 시기/일시 1617년연표보기 - 대웅전, 승당, 요사채 중건
중수|중창 시기/일시 1706년연표보기 - 중수
중수|중창 시기/일시 1942년연표보기 - 중건
최초 건립지 명월사 - 부산광역시 강서구 지사동 478지도보기
현 소재지 흥국사 - 부산광역시 강서구 지사동 478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지사동에 있는 대한불교법화종 소속 사찰.

[건립 경위 및 변천]

1706년(숙종 32)에 증원(證元)이 찬한 「명월산 흥국사 사적 비문(明月山興國寺事蹟碑文)」에 의하면, 수로왕(首露王)이 48년에 명월산 고교(高橋) 밑에서 왕후 허씨(許氏)를 친히 맞아 들여 환궁하였는데, 이때 허씨는 입고 온 비단 바지를 벗어 이 산의 산신령에게 폐백을 올렸다. 왕은 허씨의 아름다움을 달에 비유하여 산의 이름을 명월산이라 하고, 명월사를 지어 새 왕조의 태평성대(太平聖代)를 기원하는 한편, 부인과 세자를 위하여 진국사(鎭國寺)와 흥국사(興國寺)를 창건하였다.

그 뒤 임진왜란 때까지의 역사는 전하지 않으며, 임진왜란 때 불탄 뒤 1617년(광해군 9) 대웅전과 승당(僧堂)·요사채 등을 중건하였다. 1706년 승려 일원(一元)·일혜(一惠)·상진(尙眞)·응준(應俊) 등이 중수하였는데, 그때 담 밑에서 건강 원년(建康 元年, 144) 3월에 장유화상(長遊和尙)이 서역에서 들어와 불도를 전하니 왕이 중신숭불(重信崇佛)하였다는 명기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부터는 한동안 폐사로 남아 있었는데, 김원두(金元斗)가 옛터를 되찾아 방치되어 있던 유적을 수습하였고, 1942년 승려 우담(雨潭)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활동 사항]

흥국사는 대한불교 법화종 소속이었는데, 2002년 10월 창종 법회를 한 대한불교 조계종 삼화불교 부산총림으로 소속을 옮겼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흥국사에 현존하는 당우를 살펴보면 제일 입구에 명월사 옛터에서 발견된 석탑 부재를 둔 극락전이 있다. 그리고 범종을 배치한 종각, 사적비와 유허비 등의 비석이 있다. 사찰의 주 불전은 대웅전인데 정면 다섯 칸, 측면 세 칸의 다포식 겹처마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그 주위로 정면 세 칸, 측면 한 칸의 익공식 겹처마 맞배지붕 기와집인 삼성각과 정면 한 칸, 측면 한 칸의 맞배지붕 겹처마 민도리집인 미륵전이 세워져 있다.

[관련 문화재]

문화재로는 부근에서 발굴하였다는 석탑의 부재가 있다. 일명 사왕석(蛇王石)이라고도 하는 이 석탑 면석은 명월사 옛터에서 1956년 흥국사 칠성각을 건립할 때 화강암으로 만든 석제품 조각 한 점과 함께 발견되었다. 폭 74㎝, 높이 52㎝, 두께 15㎝ 정도의 크기인데 중앙에 좌불(坐佛)을 양각하고, 그 좌우에 코브라 형상의 뱀이 불상을 옹호하듯 고개를 들고 있는 모습을 새겨 놓았다. 우리나라의 불교 조각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인도 불교의 남방 전래설을 증명하는 유물이라고 사찰 측에서는 보고 있다.

이 밖에도 사찰 오른쪽에는 가락국 태조왕 영후 유허비(駕洛國太祖王迎后遺墟碑)와 승려 증원이 세운 사적비가 있으며, 안뜰의 가운데에는 1986년에 세운 오층 관음보탑과 석등·사적비 등이 있다. 흥국사는 불교의 남방 전래설 연구와 가락 불교의 연구에 귀한 자료가 되는 중요한 사찰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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