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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777
한자 咸錫憲
영어음역 Ham Seokheon
분야 종교/기독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차성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회 사상가
성별
대표경력 『씨알의 소리』 발행인
출생 시기/일시 1901년 3월 13일연표보기 -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17년 - 평양고등보통학교 재학
수학 시기/일시 1921~1923년 - 오산학교 재학
수학 시기/일시 1924~1928년 - 동경고등사범학교 문과1부에서 수업
수학 시기/일시 1919년 3월 - 3·1 운동 참여
수학 시기/일시 1928년 - 오산학교 교사 재직
활동 시기/일시 1932~1933년 - 『성서 조선』 집필
활동 시기/일시 1938년 3월 - 창씨 개명 거부로 오산학교 강제 사임
활동 시기/일시 1945년 9월 - 평북자치위원회 문교 부장에 선임
활동 시기/일시 1947년 3월 17일 - 월남
활동 시기/일시 1950년 - 6·25 전쟁 후 부산에서 성경 모임
활동 시기/일시 1963년 - 월남 언론상 수상
활동 시기/일시 1970년 - 『씨의 소리』 창간
몰년 시기/일시 1989년 2월 4일연표보기 -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8년 7월 25일 - 함석헌기념사업회 설립
추모 시기/일시 2010년 4월 - 『함석헌 연구』 발간
추모 시기/일시 2010 4월 16일 - 함석헌학회 창립
출생지 함석헌 출생지 - 평안북도 용천군 부라면 원성동

[정의]

현대에 강연을 통해 부산 지역 청년들에게 영향을 미친 종교인이자 사회 사상가.

[활동 사항]

함석헌(咸錫憲)[1901~1989]은 1901년 3월 13일 평안북도 용천군 부라면 원성동에서 태어났다. 1917년 평양고등보통학교에서 수학하였고, 1921~1923년 오산학교에 재학하였다. 1924~1928년 동경고등사범학교 문과1부에서 수학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평안북도 오산학교에 재학하면서 남강(南岡) 이승훈(李昇薰), 다석(多夕) 유영모(柳永模) 등의 영향을 받았고 일본 유학 중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의 무교회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하였고, 1928년 오산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1932~1933년 『성서 조선』을 집필하였다. 1938년 3월 함석헌은 일본식 성명 강요[창씨개명]를 거부하여 오산학교에서 강제로 사임당하였다. 1945년 해방이 되자 평안북도 자치위원회의 문교 부장에 취임하였으나, 1947년 월남하여 서울에서 종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6·25 전쟁 당시 부산으로 와 성경 연구 모임을 꾸렸는데, 이때 부산과 인연을 맺은 것은 장기려(張起呂) 박사와의 관계 때문이었다. 장기려가 1950년 12월 부산에서 제3육군병원에 근무할 때 두 사람은 초량교회에서 다시 상봉하였다. 이후 제3육군병원의 상이 병사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기 위해 장기려함석헌에게 청하여 매주 한두 차례 천막 교회에서 강론을 하게 하였다. 함석헌대저면에서 부산 대청동까지 30리 길을 버스와 도보로 왕복하며 강론하였다.

1957년 장기려가 부산의과대학부속병원 외과 과장으로 있을 때 함석헌장기려의 요청으로 한 달에 한 번씩 부산에 내려와서 『성경』, 『논어(論語)』, 『맹자(孟子)』, 『장자(莊子)』, 『노자(老子)』 등을 강의하였다. 이때 장기려는 자신의 사택 등을 장소로 제공하였다. 이후 함석헌은 1980년대 초까지 정기적으로 부산에 와서 부산 지역의 지식인, 진보적 종교인, 청년·학생 등을 상대로 강연을 이어 갔다. 특히 함석헌의 강연은 부산의 청년들에게 큰 영향을 끼쳐, 이때 함석헌의 강의를 듣고 영향을 받은 청년 학생들은 ‘씨의 모임’이라는 단체를 조직하기도 하였다. 함석헌은 1989년 2월 4일 사망하였다.

[사상과 저술]

함석헌은 일찍이 이승훈, 김교신, 유영모, 우치무라 간조의 무교회주의의 영향을 받았고 동양의 고전과 인도 철학을 섭렵하였다. 후기에는 퀘이커교를 받아들이면서 범종교주의로 기울었다. 저술로는 『뜻으로 본 한국 역사』,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등이 있으며, 『함석헌 전집』이 출판되어 있다. 1970년 『씨의 소리』를 창간하기도 하였다.

[묘소]

경기도 연천군 전곡면 간파리 감악산 묘소에 안장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함석헌은 1963년 월남 언론상을 수상하였으며, 1983년과 1985년 두 차례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되기도 하였다. 1998년 7월 25일 함석헌기념사업회가 설립되었다. 2010년 4월 함석헌기념사업회 부설 씨알사상연구원은 『함석헌 연구』 창간호를 발간하였다. 2010년 4월 16일 47명의 학자들이 발기인으로 참여한 ‘함석헌학회’가 창립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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