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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마산의 철마」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594
한자 鐵馬山-鐵馬
영어의미역 Iron Horse in Cheolma Mountain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집필자 조정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설화|암석 유래담|철마 유래담
주요등장인물 옥황상제|동해 용왕|용마 장군|거북 부대
모티프유형 바위가 된 거북|쇠처럼 굳어진 용마|쇠신당 유래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1년 9월 30일 - 『기장군지』에 「철마산의 철마」라는 제목으로 수록
관련 지명 철마산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지도보기
관련 지명 장전천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지도보기
관련 지명 미역바위[미역덤]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이곡리
관련 지명 생거북 바위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지도보기
관련 지명 용굴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에서 철마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철마산의 철마」는 큰 해일의 위기에 처한 마을 사람들을 구하려고 출동하였던 거북 부대와 대장 거북은 임무를 마쳤지만 돌아가지 못하고 ‘생 거북 바위’, ‘큰 거북 바위’ 등으로 굳어졌다는 화석 유래담이고, 용마 장군은 말라서 쇠처럼 굳어졌다는 철마 유래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2001년 기장군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기장군지』에 「철마산의 철마」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정확한 채록 시기와 채록 장소는 분명하지 않다.

[내용]

옛날 수영만에서 큰 해일이 생겨 바닷물이 수영강을 거슬러 올라와 구칠 마을의 미역바위까지 넘쳤다. 그 바람에 그 바위에 미역이 매달렸고, 철마산에도 물이 차 꼭대기가 겨우 소머리만큼 나왔으며, 거문산은 겨우 곰의 짧은 머리만큼 물 위에 솟았다. 옥황상제가 이것을 보고 불쌍히 여겨 동해 용왕에게 마을 사람을 구출해 주라고 하였다. 용왕은 용마 장군에게 거북 부대를 이끌고 출동하라고 명령하였다.

거북 부대는 미역덤 아래 용굴을 통해 이곳에 나타나서 장전천(長田川)을 막은 산사태를 치웠으나, 용굴의 물마저 빠져 버려 용궁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거북 부대는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바위로 굳어져 생 거북 바위가 되어 버렸다. 대장 거북은 철마산을 넘어 임기천 선바위 아래에서 큰 거북 바위로 굳었고, 용마 장군은 철마산 상봉에서 철마로 말라 굳었다.

후세 사람들이 이를 기리기 위하여 철마가 있는 곳에 사당을 세우고 쇠신당이라 하였다. 이 철마는 1930년 무렵까지 있었는데 일본인들이 이를 탐내어 부산광역시 금정구 두구동에 사는 편수(工匠)을 시켜 훔쳐 내게 했다. 편수는 그 대가로 큰 부자가 되었지만, 곧이어 장성한 아들 넷이 급사를 하였다. 그 후 편수가 새로이 주철로 철마를 만들어 쇠신당에 안치했지만, 1940년 무렵에 사라지고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모티프 분석]

「철마산의 철마」의 주요 모티프는 ‘바위가 된 거북’, ‘쇠처럼 굳어진 용마’, ‘쇠신당 유래’ 등이다. 미역바위에 관련된 전설인 「철마면 이곡 마을의 미역덤」도 위의 용마 모티프를 주축으로 하여 농부를 살려 준 용마에 대한 신이담이다. 그런데 「철마면 이곡 마을의 미역덤」에서는 용마가 나타났던 곳이 용굴인데 현재는 사라지고 없다는 식으로 간략히 설명하고 있는 반면에, 「철마산의 철마」에서는 용굴이 없어진 경위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어 흥미롭다. 또한 「철마산의 철마」는 철마의 유래를 설명하면서 현재 그 증거물이 사라진 것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이 훔쳐간 것이라고 하면서 전설의 진실성을 확보하고자 하고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3.05.10 표기 오류 수정 감정기를 강점기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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