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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마면 와여 마을의 비음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591
한자 鐵馬面瓦餘-
영어의미역 Bieum-gol Valley in Cheolman-myeon Wayeo Village
이칭/별칭 「비음골」[와여 마을]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와여리
집필자 조정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설화|풍수담|발복담
주요등장인물 해주 오씨 부부|노승
모티프유형 해주 오씨 집안의 명당 발복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1년 9월 30일 - 『기장군지』에 「비음골」[와여 마을]이라는 제목으로 수록
관련 지명 와여리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지도보기
관련 지명 비음골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와여리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와여리에서 비음골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철마면 와여 마을의 비음골」은 오씨 부부가 고승이 알려준 대로 부모의 묘를 쓰고 집을 지어서 부자가 되었다는 풍수담이자 발복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2001년 기장군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기장군지』에 「비음골」[와여 마을]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정확한 채록 시기와 채록 장소는 분명하지 않다.

[내용]

옛날 어느 노승이 철마면 와여리(瓦餘里) 비음골에 해주 오씨 부부를 안내하여 산기슭에는 부모의 산소를 쓰고, 10여 채의 초가집이 있는 한가운데에 큰 기와집을 지어 살면 큰 부자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땅을 파자 그 속에서 이상한 빛이 나더니 새 세 마리가 나와서 두 마리는 부모의 음택 자리에 앉고 한 마리는 고승이 말한 마을의 양택 자리에 앉았다. 두 마리의 새가 앉은 곳은 부모의 산소로 정하였으나 한 마리의 새가 앉은 곳은 여러 채의 집들이 모여 있어 새로 저택을 지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마침 그 해 겨울 불이 나서 10여 채의 집들이 모두 불타 버리자 오씨 부부는 그곳에 저택을 지을 수 있었다. 이후 하루가 다르게 재산이 불어나 광복 후까지도 그 재력이 대단하였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철마면 와여 마을의 비음골」의 주요 모티프는 ‘해주 오씨 집안의 명당 발복’이다. 「철마면 와여 마을의 비음골」 이야기는 풍수지리 사상을 기반으로 한 명당 모티프를 기본 축으로 하고 있다. 보통은 양택 풍수[집터의 길흉을 판단하는 풍수]와 음택 풍수[묏자리의 길흉을 점쳐 판단하는 풍수] 중에서 하나만을 얻어 부자가 된다는 양상으로 진행되는데 「철마면 와여 마을의 비음골」은 양택 풍수와 음택 풍수의 명당 모두를 얻게 되어 거부(巨富)가 되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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