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5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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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晉州-歌 |
영어의미역 | Song for a Daughter-in-law Leading a Harsh Married Life in Jinju |
이칭/별칭 | 「진주 낭군 노래」,「시집살이 노래」,「빨래 노래」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금정구|강서구|남구|중구|부산진구 |
집필자 | 류경자 |
[정의]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금정구, 강서구, 남구, 중구, 부산진구 등지에서 길쌈을 하면서 부르는 노동요.
[개설]
「진주 난봉가」는 전국에 걸쳐 널리 분포하는 서사 민요로, 부산 지역의 부녀자들이 길쌈을 하면서 부르는 방적 노동요이다. 이를 「진주 낭군 노래」, 「시집살이 노래」, 「빨래 노래」 등이라고도 한다. 고려 가요에 모태를 두고 있는 「진주 난봉가」는 남편이 기생첩을 데리고 와 아내를 본체만체하자 아내가 목매달아 죽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본래 「진주 난봉가」는 고려 가요 중의 하나인 「월정화」라는 노래의 배경과 내용이 흡사해 그 생성 시기를 짐작케 해 주고 있다. ‘월정화’는 기생인데, 위제만이라는 사람이 기생에 미혹되어 부인을 근심과 분노로 죽게 하자, 진주 사람들이 이를 슬퍼하여 부인을 추억하고 위제만의 광혹함을 풍자해 노래한 것이라고 한다.
[채록/수집 상황]
2002년 김승찬·박경수·황경숙 등이 집필하고 세종출판사에서 발행한 『부산 민요 집성』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공저자들이 1992년 1월 13일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송정동 송정 마을로 현지 조사를 나가 주민 박명순[여, 76]과 강분이[여, 76], 1993년 7월 13일 부산광역시 금정구 두구동 조리 마을로 현지 조사를 나가 주민 양이순[여, 73], 1997년 1월 20일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만화리로 현지 조사를 나가 주민 김순금[여, 64], 2000년 10월 1일 부산광역시 강서구 범방동 가리새 마을로 현지 조사를 나가 주민 김금덕[여, 60] 등으로부터 각각 채록한 것이다.
또한 2010년 류종목이 집필하고 민속원에서 간행한 『현장에서 조사한 구비 전승 민요』-부산편에 실려 있다. 이는 1999년 10월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으로 현지 조사를 나가 주민 정순이[여, 71],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으로 현지 조사를 나가 주민 강난선[여, 75] 등으로부터 각각 채록한 것이다.
그리고 부산진구청 문화체육과에서 간행한 『내사랑 부산진 그 세월의 흔적을 찾아서』에도 실려 있다. 이는 2010년 2월 4일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당감동으로 현지 조사를 나가 주민 김학임[여]에게서 채록한 것이다.
[구성 및 형식]
「진주 난봉가」는 독창으로 불리는데, 긴 서사를 지니고 있다 보니 나지막이 읊조리는 방식으로 주로 불린다.
[내용]
남편도 없이 시집살이를 하던 아내가 남편이 돌아오니 마중을 가 보라는 시어머니의 권유로 진주 남강에 빨래를 간다. 그런데 남편은 기생첩을 끼고 돌아오면서 빨래하는 아내를 본체만체하고 가 버린다. 빨래를 하고는 집으로 돌아와 보니, 남편은 기생첩을 끼고 노래를 부르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마음이 상한 아내는 목매달아 죽어 버린다. 그때서야 남편은 기생첩의 정은 삼 년이지만 본처의 정은 백년이라고 하면서 후회를 한다. 부산 지역 「진주 난봉가」의 대표적인 노랫말은 다음과 같다.
울도담도 없는집에 시접삼년을 살고나니/ 시어마씨 하는말씀 야야아가 며늘아가/ 진주낭군을 만날라면 진주남강에 빨래가라/ 진주남가에 빨래가니 돌도좋고 물도좋아/ 오동통통 두드르니 난데없는 발자죽소리/ 철까딱철까딱 들려오네/ 옆눈으로 쳐다보니 하늘같은 갓을쓰고/ 구름같은 말을타고 못본듯이 지나가네/ 흰빨래는 희기씻고 검둥빨래는 검기씻고/ 집이라고 돌아오니 시어마씨 하는말씀/ 야야아가 며늘아가 진주낭군을 만날라거든/ 사랑방으로 내다봐라 사랑방에 내려가니/ 오색가지 술안주에 기생첩을 옆에끼고/ 권주가를 하는구나/ 이꼴을 보자마자 별당으로 뛰어가서/ 몡주석자 수건에다 목을매어 황천갔네/ 이말들은 낭군님은 버선발로 뛰어와서/ 그만일로 목을매나 기생정은 삼년이요/ 본댁정은 백년일세[김순금의 노래].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길쌈 노동은 공동 작업으로 지역민들의 일상생활과 연관이 깊다. 예전의 부녀자들은 낮에는 들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모여 길쌈을 했다. 이때는 자신들의 정서를 노래에 담아내거나, 힘든 삶을 노래로써 달래며 위안을 얻고 서로를 위로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진주 난봉가」와 같은 방적 노동요는 옛 시대를 살던 우리나라의 여인들에게 있어 활력소와도 같은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현황]
오늘날은 노동 현장이 사라지거나 변화한 관계로 인해 길쌈할 때 부르던 노래들이 많은 부분 소멸되었으며, 전승되는 노래들이라 할지라도 유희요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줄거리를 지닌 서사 민요 조차도 이러한 추세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다보니 읊조리던 방식의 서사 민요가 채록의 현장에서는 다소 목청을 뽑는 방식으로 가창되기도 한다.
[의의와 평가]
「진주 난봉가」는 역사적 사실이 민요화했을 가능성이 높은 노래로, 『고려사(高麗史)』 속악조에 실려 있는 「월정화」라는 노래의 배경과 그 내용이 흡사해 이 시기 서사 민요의 존재 가능성을 강력하게 시사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