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82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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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造里- |
영어의미역 | Jori Village |
이칭/별칭 | 조리동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금정구 조리2길 11[두구동 1153] 조리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송진모 |
성격 | 자연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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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수 | 153가구 |
인구(남, 여) | 345명[남 177명|여 168명] |
변천 시기/일시 | 1740년 - 북면 두구리 |
변천 시기/일시 | 1832년 - 두구리 한자명 변경 |
변천 시기/일시 | 1904년 - 송정동으로 개칭 |
변천 시기/일시 | 1917년 - 북면 송정동 일부가 기장군으로 분할 |
변천 시기/일시 | 1963년 - 부산직할시 북면출장소로 편입 |
변천 시기/일시 | 1975년 - 동래구로 편입 |
변천 시기/일시 | 1988년 - 금정구로 분구 |
변천 시기/일시 | 1995년 - 부산직할시 금정구 두구동 조리 마을에서 부산광역시 금정구 두구동 조리 마을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99년 - 선동, 두구동 통합하여 행정동인 선두구동 설치 |
자연 마을 | 조리 마을 - 부산광역시 금정구 조리 2길 11[두구동 6통] 조리 마을 |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두구동에 있는 자연 마을.
[명칭 유래]
조리(造里) 마을의 명칭 유래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임진왜란 때 조씨 성을 가진 사람이 정착한 마을이라고 하여 조리(趙里)라고 하였다가 이름이 변경되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동래군 북면 송정동(送亭洞)에 속하였으나, 1917년 이후에 조리천(造里川)을 경계로 현재의 두구동 조리(造里)와 기장군 철마면 송정리(送亭里)로 분리되며 인위적으로 조성된 마을이라서 붙여진 명칭이라는 것이다.
[형성 및 변천]
조리 마을은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대두 마을과 함께 두구동에서 가장 먼저 형성된 마을이라고 한다. 조리가 속한 지역은『동래부지(東萊府誌)』[1740]에 북면 두구리(豆口里)로, 『동래부읍지(東萊府邑誌)』[1832]에는 두구리(杜邱里)로 한자명이 변경되어 오늘에 이른다. 조리 마을은 『경상남도 동래군 가호안』[1904]에는 송정동(送亭洞)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김씨(金氏) 6호, 이씨(李氏) 6호, 송씨(宋氏) 1호, 도씨(都氏) 1호, 정씨(鄭氏) 1호의 15호가 거주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1917년 이후 조리천을 경계로 현재의 두구동 조리와 기장군 철마면 송정리로 분리되었다.
1963년 부산직할시 북면출장소에 속하였다가 1975년 동래구로 편입되었으며, 1988년 동래구에서 분구되어 금정구의 관할이 되었다. 1995년 부산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승격되면서 부산광역시 금정구 두구동 조리 마을이 되었다. 1999년 선동, 두구동을 통합하여 행정동인 선두구동이 설치되었다.
[자연 환경]
두구동의 최북단에 있어 서쪽으로 흘러 수영강과 합류하는 송정천[조리천이라고도 함]을 경계로 기장군과 접해 있다. 하천을 따라 상수리나무, 갈참나무 등 10여 그루의 노거수가 즐비한 숲 공원이 있으며, 두구동 1192-1번지에는 두구동 느티나무[수령 300년으로 금정구의 보호수]가 있고, 주변에 두구동 푸조나무 등 3그루도 있다.
[현황]
조리 마을은 2001년 12월 200가구에 640명이 살았으나, 2012년 4월 현재 인구는 153가구에 총 345명으로 남자가 177명, 여자가 168명이다. 개발 제한 구역 및 상수원 보호 구역으로 설정되어 많은 제한을 받고 있으며, 주민의 절반 정도가 농업과 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주변에 대우정밀, 두구동 연꽃 소류지, 스포원 파크[금정 체육공원], 홍법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