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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439
한자 金寶文
영어음역 Gim Bomun
이칭/별칭 유곡(裕谷)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와여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현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본관 김해(金海)
대표관직|경력 병마절제도위
출생 시기/일시 1425년연표보기 - 출생
몰년 시기/일시 1491년연표보기 - 사망
거주|이주지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와여리
묘소|단소 김보문 묘소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지도보기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기장군 철마면 와여리 김해 김씨 서강공파 입향조.

[가계]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유곡(裕谷). 아버지는 김계금(金係錦)이며, 어머니는 의성 김씨(義城金氏)이다. 3남 1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증손이 임진왜란 때 공훈을 세운 김일개(金一介), 김일덕(金一德), 김일성(金一誠)이다.

[활동 사항]

김보문(金寶文)은 1425년(세종 7)에 태어났다. 병마절제도위(兵馬節制都尉)의 벼슬을 지냈으나 아버지가 1456년(세조 2) 사육신 사건으로 의성 현령의 관직을 버리고 김해 진영으로 낙향하자 함께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김보문은 효자로 이름을 알렸다. 1442년(세종 24) 당시 18세의 나이였던 김보문은 어머니 의성 김씨가 중병으로 위중하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수혈하기도 하였다. 결국 어머니는 3일간의 혼수상태에서 회복되었다. 이러한 효성이 고을과 조정에 알려져 참봉 벼슬이 내려졌다.

또한 김보문은 기개가 호탕하고 활쏘기와 말 타기에 능하였으며, 잡예에도 두루 통달하였다. 항상 겸손하여 세상에 드러나지 않으려고 하였다. 만년에는 글을 덮고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지성으로 사람을 대하고, 아낀 물건을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하는 데 사용하였다. 나이가 들어서는 기장군 철마면 와여리로 들어와 김해 김씨 서강공파의 입향조가 되었다. 1491년(성종 22) 향년 67세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

묘소는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김보문임진왜란 때 공훈을 세운 증손 김일개, 김일덕, 김일성 등으로 인하여 수군만호(水軍萬戶)에 추증되었다. 의열사에서 배향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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