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4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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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一介 |
영어음역 | Gim Ilgae |
이칭/별칭 | 여강(汝剛),송미(松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와여1길 28-21[와여리 20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심민정 |
[정의]
조선 후기 부산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여강(汝剛), 호는 송미(松楣). 도총관공(都摠管公) 김경신(金敬臣)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통정대부 김수(金洙)이다. 기장 출신 의병인 김일성(金一誠), 김일덕(金一德)이 형제이다.
[활동 사항]
김일개(金一介)[1562~1629]는 1562년 기장현 하북면 예림방[현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예림리]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동생 김일덕, 김일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1597년(선조 30) 12월에 시작된 도산성(島山城)[현 울산 학성] 전투에 참여하였다. 의병들을 이끌고 화철령(火鐵嶺)[기장군과 울산군의 경계가 되는 기장군 장안읍 신명례 동쪽에 있는 재] 고개 너머에 진을 치고 서생(西生)과 남창(南倉)에 있는 적병들을 정찰한 뒤, 밤중에 급습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여세를 몰아 동래성에 이르러 의병장 김정서(金廷瑞), 문세휘(文世輝)와 합세하여 조선군의 별장 김응서의 군사 4,500명과 함께 일본의 보급로를 끊어 대파하고 동래성을 수복하였다. 정유재란 때는 김일덕과 함께 영가대 선착장을 탈환하였다. 1629년에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605년 선무 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일등에 봉해졌고, 영조 때 병조 참의로 증직되었다. 동래 부사 이안눌(李安訥)의 주청으로 공신이 되었고, 김일개와 동생 김일덕을 포함한 24인은 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락동에 있는 충렬사(忠烈祠), 기장군 철마면 와여리에 있는 의열사(義烈祠)에서 제향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