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4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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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日帝强占期勞動運動 |
영어의미역 | Labor Movement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박철규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노동자 계급이 전개하던 조직적인 활동.
[개설]
일제 강점기 노동 운동은 부산 지역의 노동자들이 경제적·사회적인 지위의 안정과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 위하여 전개하던 운동이다.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의 노동 운동은 제1차 세계 대전 후 불황에 따라 1920년대 초부터 크고 작은 규모로 활발히 전개되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1921년의 부산 부두 노동자 총파업을 들 수 있다. 이는 1921년 9월 불경기를 이유로 임금 인하를 단행한 하역 회사의 조치에 대항하여 부두의 운수 노동자 5천여 명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 투쟁을 단행한 사건이다. 부산 부두 노동자 총파업은 한 도시 동일 부문의 전체 노동자들이 전체 고용주들을 상대로 전개한 조선 초유의 대규모 항쟁이라는 점에서 부산 지역 노동 운동사상 획기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생존권 투쟁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은 그 한계로 들 수 있겠다.
[변천]
1919년의 3·1 운동 전후로 국내에 사회주의 사상이 보급되면서 각종 청년회와 노동 운동 단체 등을 통하여 청년 지식인들과 노동자들의 만남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즉 1922년 1월 부산노동친목회는 부산청년회의 간부들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영도 지역의 공장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원하였다. 또한 부산청년회는 도항 철폐 운동과 친일파 박멸 운동을 비롯해 노동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특히 1925년 4월 조선공산당 결성 이후 부산 지역의 노동 운동은 사회주의적 성향을 지닌 청년 단체[부산진청년회·부산청년연맹]나 사상 단체[제4계급], 노동 단체[부산인쇄직공조합] 등이 결성되면서 새로운 운동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1920년대의 지식인 중심의 사회주의 운동은 아직 노동자의 현실에 완벽하게 뿌리를 내리지 못하였다. 1924년 1월 1일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설립된 부산노동동맹회[부산노동친목회 후신]도 그다지 큰 성과를 낳지 못하고 있었다. 1925년 11월에는 부산 지역의 인쇄 노동자들이 13개의 조항을 내걸고 총파업을 단행하였는데, 경상남도와 전국 각지에서 응원하거나 물품 등을 보내는 등 큰 반향을 일으켜 부산 지역 사회주의 운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1929년 무렵부터는 조선소, 인쇄소, 도기 회사, 방직 회사, 고무 공장 등 각 부문별로 총파업 투쟁이 더욱 활성화되었고, 타협·패배 등으로 나름대로 성과를 남기기도 하였다. 이 시기 부산 지역의 노동조합은 부산고무직공조합을 비롯해 19개소였다.
1931년부터 1932년 사이 혁명적 노동조합 건설 운동이 부산 지역에서 전개되어, 1920년대 노동 운동과 그 양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조선공산당 부산 지부는 부산 합동 노조, 적색 교원 노조 등에 조직원들을 파견하여 활동하였다. 이들 사회주의자들은 메이데이 총파업[부산 내 12개 공장], 적색노조전국협의회 부산지방최고협의회, 부산적로건설협의회 등을 조직하여 1931년 1월 제망 연사 공장의 파업을 시작으로 1932년 11월 조선 방직 파업에 이르기까지 파업 지도 및 운동을 전개하였다. 1934년 10월 부산적색노동조합건설준비위원회는 각 공장 등에서 활동하다가 검거돼 투옥되기도 하였다.
또한 1933~1935년 사이 부산 지역의 일본 기업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과 임금 인하 반대 파업을 전개하였다. 이 시기에 전개된 파업은 총 31건으로 관철하거나 타협하여 큰 성과를 남기기도 했다.
[의의와 평가]
일제 강점기의 부산 지역 노동 운동은 1921년 이후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생존권] 투쟁에서 노동자 계급을 대변하는 계급적 자각으로 이어졌다. 그때마다 사회주의 계열의 노동 운동가들이 여러 번의 총파업을 지도 또는 협력하여 승리를 이끌기도 하였다. 이런 운동의 힘은 해방 후 2개월 만에 전국노동조합평의회[전평]의 결성과 부문별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고, 지방 평의회가 조직되어 혁명적 노조 운동을 이끌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