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0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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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水營農廳- |
영어의미역 | Nongcheongnori in Suyeong[Traditional Korean Play Performed by Farmers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작품/무용과 민속극 |
지역 | 부산광역시 수영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국희 |
[정의]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에서 농청의 구성원들이 농사짓는 과정을 민요 중심으로 재현한 놀이.
[개설]
수영농청놀이는 수영 지역 농민들의 자치 단체인 농청(農廳)의 각종 작업과 그에 따르는 풍물과 농요(農謠) 등을 재현한 놀이이다. 수영은 조선 시대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영이 있었던 수군의 요새지로 성 안팎으로 방대한 취락 지역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생업 형태에 따라 「좌수영어방놀이」와 수영농청놀이가 발달하였다.
농청은 농사를 효율적으로 짓기 위해 농민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조직된 단체로 두레라고도 한다. 벼농사에는 파종, 이앙, 제초 등에 있어서 제한된 시간 내에 대량의 노동력이 필요했으므로 농청과 같은 공동 노동은 필수적인 농경법이었다. 수영 지역은 동부와 서부로 농청이 나누어지며, 농청원은 노동력이 있는 성인 남녀로 구성되었다. 또 작업의 효율을 위해 집강(執綱)[대표], 행수(行首)[농사의 총감독], 문서잡이[서무와 회계 및 기록], 집강(集講)[계획 수립과 지도], 야장(野長)[숫총각, 들일의 책임자], 영각수(令角手)[땡깔이, 영각을 불어 집합하거나 작업을 지시] 등의 직책을 두었다.
1945년 해방 당시만 해도 수영은 약 350호 1,700여 명의 주민 대부분이 농민이었고, 농청 조직도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1966년부터 도시화에 따라 농가 호수가 격감하면서 농청도 해체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수영고적민속예술보존협회를 중심으로 몇몇 뜻있는 수영 지역 주민들의 노력에 의해 농청의 활동과 그에 따른 민요와 놀이를 복원하게 되었다. 수영농청놀이는 1972년 2월 18일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로 재지정되어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다.
[구성 및 형식]
수영농청놀이는 농요를 중심으로 벼농사의 전 과정을 재현한다. 연희의 구성은 풀노래, 가래 소리, 모찌기 소리, 모심기 소리, 도리깨타작 소리, 논매기 소리, 소싸움 및 칭칭 소리 등으로 짜여 있다. 풍물 악기는 꽹과리, 징, 장고, 북 등이 1개씩만 동원되는 소박한 형태이다. 풍물은 일을 시작하고 끝낼 때, 휴식, 간단한 고사, 유흥적 오락 등을 할 때 농청원들이 친다. 또 나팔의 일종인 영각을 불어 집합, 일의 시작과 마침, 휴식, 비상을 알려 준다.
[내용]
1. 풀노래
영각수의 집합 신호가 울리면 남녀 농청원들은 각각 농기구를 준비하여 모여든다. 농기(農旗), 농악대, 양반, 소, 농부들, 부인들 순으로 정렬하면 특별한 동작 없이 남녀 두 사람이 풀노래를 부른다.
“곤달비야 곤달비야~/ 잘매산 곤달비야~/ 톳곡산을 넘지마라~/ 까마구야 까마구야~/ 잘매산 갈까마구야~/ 은재놋재 단재수재 단단히 가리물고~/ 굵은솔밭 지내가이 잔솔밭을 자라드네~[이하 생략].”
이어서 일동은 농악 장단에 춤을 추며 일터로 상정되는 놀이마당 중앙으로 간다.
2. 가래 소리
행렬이 놀이마당 중앙으로 들어오면 내방청원[여자 농청원]들은 모두 퇴장하고 남자 농청원들은 일을 시작한다. 소 두 마리를 가지고 한쪽은 논갈이, 한쪽은 써레질을 한다. 그 주위에서 가래꾼들이 빙 둘러서 가래질을 하며 가래 소리를 부르는데, 내용은 가래질 묘사, 풍년 기원, 신세 자탄 등이다.
“어허가래야/ 어허가래야[후렴, 이하 후렴은 생략]/ 이가래로/ 물을 모으자/ 시내거렁에/ 보를막고/ 봇도랑치고/ 논둑을모우고/ 이논에다/ 물을넣어면/ 금년농사는/ 대풍년진다[이하 생략].”
3. 모찌기 소리
가래 소리가 끝나면 가래꾼들은 퇴장하고, 내방청원들이 들어와 모찌기를 하며 모찌기 소리를 한다. 모찌기 소리는 앞소리를 주면 뒷소리를 받는 교환창식으로 가창하며, 내용은 모찌기에 대한 묘사와 그와 관련된 유흥적인 것으로 되어 있다. 이때 남자 농청원들은 모를 날라 논[놀이마당]에 모심기를 할 수 있도록 던져 놓거나, 논의 이곳저곳을 손질한다.
“일월이 돋아와도 이실갤줄 모르더라/ 맹홧대를 꺽어들고 이실털로 가자시라/ 한강에다 모를부아 모찌기도 난감하네/ 하늘에다 목캐갈아 목캐따기 난감하네/ [중략] 바다겉은 이못자리 장구판만 남았구나/ 장구야판은 좋다만은 장구떨니 누있던고/ 밀치라 닥치라 모두잡아 훌치소/ 영해영천 초목에 호미손만 놀리소.”
4. 모심기 소리
모찌기 소리가 끝나면 내방청원들은 논[놀이마당]으로 들어가 모심기를 시작한다. 이때 정자관에 안경을 끼고 중의 적삼과 조끼를 입은 지주가 나와 일머리를 틀며 감독을 한다. 모심기 노래는 교환창으로 부른다. 내용에 따라 아침, 점심, 중참, 저녁, 공통의 것으로 나누어 부른다. ‘이논에다 모를숨거……’는 아침 노래, ‘서울이라 남정자야……’는 점심 노래, ‘주천당앞을 지내치니……’는 중참 노래, ‘오늘해가 요만되며……’는 저녁 노래이다. 수영 지방은 예로부터 여자들이 모심기를 해 왔기 때문에 모심기 노래는 여자들이 가창한다.
“이논에다[이] 모를숨거 금실금실 영화로세/ 우리야부모 산소등에 솔을숨거 영화로세/ 서울이라[이] 남정자야 점슴참이 늦어오네/ 미나리야[이] 시금초를 맛본다고 더디오네/ 사래짓고[이] 장찬밭에 목캐따는 저처녀야[이]/ 목캐꽃[이] 지색인데 처자얼굴 철색지네[이][이하 생략].”
5. 도리깨타작 소리
내방청원들이 모심기를 하는 동안 한쪽 옆에서는 남자 농청원들 6~8명이 보릿대를 쌓아 놓고 도리깨로 타작을 하며 도리깨타작 소리를 한다. 도리깨타작은 노래의 박자와 일의 박자가 정확히 일치하여 일을 능률적으로 수행하게 된다.
“어화/ 어화[후렴, 이하 후렴 생략]/ 때려라/ 보리보고/ 때려라/ 이삭이/ 안붙거로/ 야무치기/ 어화/ 이삭을 보고/ 때려라/ [이하 생략].”
6. 중참
모심기와 보리타작이 끝나면 남녀 농청원들은 풍물 가락에 맞추어 어울려 춤을 춘다. 이때 여자 한 명은 술동이를, 또 한 명은 함지박을 이고 나온다. 술동이 옆에서는 남자들이, 함지박 옆에서는 여자들이 둘러 앉아 중참을 먹는다. 옆에서는 소 여물통에 풀을 뜯어 소가 먹도록 한다.
7. 논매기 소리
영각을 불면 논매기가 시작된다. 이때 밭매기, 보리타작 뒷손질하기도 같이 하는데 논매기 외에는 노래가 없다. 논매기 소리의 내용은 수영 팔경을 중심으로 주위의 경관을 나타낸 것이 대부분이며 신세 자탄적인 것도 있다.
“에~헤~아~아~/ 에~헤~아~아~/ 양운 폭포 이른구름/ 에~헤~아~아~/ 해를모아 돌아드니/ 에~헤~아~아~/ 온정리는 명승지요/ 에~헤~아~아~/ 가인재사 놀던데요/ 에~헤~아~아~/ 해운대 동백섬은/ 에~헤~아~아~/ 고운선생 놀던데요/ 에~헤~아~아~/ [이하 중략].”
8. 소싸움과 칭칭이 소리
논매기가 끝나면 동부 농청기와 서부 농청기를 중심으로 남녀 농청들은 풍물 가락에 맞춰 빙글빙글 춤을 춘다. 이때 동서부의 소몰이꾼이 소[천으로 만든 소 가면 속에 두 사람이 들어가 연기를 함]를 몰고 중앙으로 나와 소싸움을 한다. 소싸움이 끝난 후 한데 어울려 칭칭이 소리를 한 후 풍물 소리에 맞춰 퇴장한다.
[연행 시기 및 관련 의례]
수영농청놀이는 민속 행사나 지역 축제 등에서 연행되고 있다.
[현황]
수영농청놀이는 수영고적민속예술보존협회를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다. 오성곤, 태흥룡, 신말순, 유정오 등이 보유자로 있다.
[의의와 평가]
수영농청놀이는 도시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옛날의 농업 문화와 그에 따르는 민요 현장의 모습을 재현하여 보여 준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수영야류」, 「좌수영어방놀이」와 함께 수영 및 부산을 대표하는 민속 문화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