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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935
한자 佛塔
영어의미역 Buddhist Pagoda
분야 종교/불교,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고대/고대,고려/고려,조선/조선,근대/근대
집필자 조원영

[정의]

부산 지역에 남아 있는 통일 신라 시대~근대의 불탑.

[개설]

부산 지역의 불탑(佛塔)에 나타난 특징을 살펴보면, 통일 신라 시대에 세워진 부산 범어사 삼층 석탑(釜山梵魚寺三層石塔)[보물 제250호]은 하층 기단과 상층 기단에 새겨진 안상(眼象)[코끼리 눈을 형상화하여 석탑이나 석등 등에 새긴 것] 문양이 독특하다. 석탑사 탑재[선여사 터 폐탑]는 기단부가 특이하게 모전탑(模甎塔)의 형태를 취하며, 상륜부도 석제 찰주(擦柱)와 상륜으로 구성된 점이 특징이다.

고려 시대에 조성된 석탑 가운데 몇몇 예에서 볼 수 있는 상층 기단 굄과 초층 옥신굄이 3단을 이루는 형식은 통일 신라 말기의 석탑에서 보이기 시작하는 형태로, 고려 시대에도 널리 유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부연과 옥개 받침은 얇게 표현하여 고려 석탑의 특징을 나타내는 예가 보인다. 추녀 하단은 대부분이 고려 시대 영남 지역에서 조성되는 신라 전형 양식을 충실히 본받아 수평면으로 표현하였음에 비해, 고려 오층 석탑(高麗五層石塔)[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13호]만은 추녀 하단이 추녀 상단과 함께 추켜올려진 모습을 보이고 있어 역시 고려 석탑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 대곡사 터[大谷寺址]의 오층 석탑(五層石塔)[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9호]과 부산대학교 내 석탑재에는 사천왕 부조상이 조상(造像)되어 있어 통일 신라 시대 석탑 부조상의 형식을 이어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각 시기별 주요 탑과 내용은 다음과 같다.

[통일 신라 시대의 불탑]

부산 범어사 삼층 석탑의 탑신부 형식은 일반적인 신라 전형 양식의 삼층 석탑과 차이가 없다. 8세기 무렵의 탑들보다 옥개 받침이 4단으로 한 단 줄어들면서 규모가 축소된 점은 신라 하대에 제작된 석탑에서 흔히 보이는 현상이다. 부산 범어사 삼층 석탑이 같은 시기의 탑과 다른 특징은 하층 기단과 상층 기단에 새겨진 안상 문양이다. 석탑의 안상 문양은 8세기 중반의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 석탑(求禮華嚴寺四獅子三層石塔)[국보 제35호]에 표현되기 시작하여 9세기에는 많은 석탑에서 안상 문양이 표현되었다.

석탑사 탑재는 현재 기단석과 탑신의 옥개석 일부, 상륜부가 남아 있다. 기단부는 이 탑이 지닌 특징을 가장 잘 보여 주는 부분이다. 기단석은 4개의 돌로 이루어져 있는데, 4개의 기단석 모두 갑석과 부연을 표현하지 않았고 우주(隅柱)와 탱주(撐柱)도 없다. 네모난 석재를 밖으로 노출되는 부위는 가공하였고, 탑신을 받치는 굄 부분은 1단의 각형으로 다듬었다. 옥개석의 형태는 신라 전형 양식의 석탑과 같다. 따라서 이 탑은 네모난 석재를 이용한 단층 기단 위에 전형 양식의 삼층 탑신을 세운 특수 형식의 석탑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 시대의 불탑]

범방동 삼층 석탑(凡方洞三層石塔)[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23호]은 이중 기단 위에 삼층의 탑신을 올렸다. 상층 기단의 면석 1매와 삼층 옥신석은 없어졌지만 나머지 부재는 완전하다. 만덕사지(萬德寺址)[부산광역시 기념물 제3호]의 삼층 석탑은 통일 신라 후기부터 유행하기 시작하여 고려 시대에 많이 제작된 단층 기단의 탑으로, 기단에는 탱주를 표현하지 않았다. 각 층 옥신석에는 우주가 새겨져 있으며, 옥개석과 옥개 받침은 각각 다른 돌로 제작하였고 옥개 받침은 각 층이 3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곡사 터의 오층 석탑은 원래 울산광역시 울주군 청량면 삼정리에 위치한 대곡사 터에 있던 것을 1966년에 부산대학교로 옮겨 와 복원한 것으로, 기단부와 상륜부는 없어져 새로 만들었다. 오층 석탑은 옥신석과 옥개석을 구성하는 방법이 다른 탑들과 구별된다. 오층 석탑은 규모 면에서는 이전 시기보다 작아지고 옥개석이 짧아졌으며, 옥개 받침이 얕고 그 수도 축소되었지만, 통일 신라 시대 석탑 양식을 계승한 고려 시대의 석탑으로 보인다. 부산대학교 박물관 앞 석탑재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반고사 터[磻高寺址]에서 수습한 것으로 초층 옥신석으로 추정된다. 사방에 안상을 새기고 그 안에 사천왕상을 양각하였다. 규모로 보아 이 탑은 소형의 석탑이다. 현재 서쪽과 북쪽의 사천왕상만 완전하고, 동쪽과 남쪽의 사천왕상은 파손되어 형상을 알기 어렵다.

고려 오층 석탑은 원소재지를 알 수 없는 독특한 형식의 석탑이다. 이중 기단 위에 오층 탑신을 올려놓은 고려 석탑으로, 현재 하층 기단과 오층 옥개석, 상륜부가 남아 있지 않다. 하층 기단이 없어져 기단부의 원형은 알 수 없다. 옥개석 추녀의 반전이 심한 탑으로서 전체적으로는 통일 신라 석탑의 양식을 본받았지만, 이층 옥신석을 2개의 돌로 구성하였다는 점과 옥개석이 넓은 점, 상층 기단 갑석의 모서리 마루 표현 등에서는 백제 양식계 석탑의 요소도 보이고 있다. 따라서 고려 오층 석탑은 부산 지역의 다른 고려 시대 석탑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석탑이라고 할 수 있다.

원효암 동편 삼층 석탑(元曉庵東便三層石塔)[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11호]은 보수할 때 1단의 탑신 굄이 있는 기단 갑석 1매와 탱주 1주가 모각된 기단 면석 1매, 기타 석재들을 이용하여 넓은 지대석을 만들면서 기단은 복원하지 않았으며, 그 위에 삼층 탑신을 복원하였다. 남아 있는 기단 갑석으로 보아 이중 기단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전체적으로 보면 통일 신라 시대의 석탑 양식을 계승하고 있는 탑이다. 원효암 서편 삼층 석탑(元曉庵西便三層石塔)[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12호]은 원래는 이중 기단이었는데 지대석과 하대 저석·하대 중석을 잃었고, 하대 갑석 위에 상층 기단과 삼층의 탑신부, 노반과 복발이 한 돌로 되어 있는 상륜부가 남아 있다. 상대 갑석에는 초층 옥신을 받칠 수 있도록 3단의 굄이 모각되어 있는데, 하대 갑석 상면의 굄과 형태가 같고 아래에는 부연이 얕게 표현되었다.

동아대학교 박물관 앞에 있는 삼층 석탑(三層石塔)[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10호]은 원래 경상남도 합천군 대병면 상천리의 폐사지에 있었는데, 1960년에 동아대학교로 옮겨 와 복원하였다. 상륜부는 모두 없어졌고 기단 하대석은 이전하면서 새로 만들었다. 기단부는 단층 기단으로 탱주는 표현하지 않았으며 한 돌로 만들었다. 감로리 석탑은 동아대학교 박물관 앞에 서 있는데 지대석과 하층 기단 갑석, 하층 기단 중석 1매, 상층 기단 갑석, 상층 기단 면석 3매, 3개의 옥개석과 3층 옥신석만 남아 있다.

[근대의 불탑]

장안사(長安寺) 요사채 앞에 있는 오층 석탑은 4매의 석재로 지대석을 삼아, 그 위에 탱주 1주가 모각된 하층 기단을 한 돌로 만들어 올렸다. 상층 기단 역시 한 돌로 네 면에 우주를 모각하였다. 상층 기단 갑석은 하층 기단 갑석보다 커서 균형을 잃었다. 동성로 오층 석탑은 동아대학교 박물관 앞에 전시되어 있다. 방형 지대석 위에 오층의 탑신을 올렸다. 탑신부는 네 모서리에 우주를 모각하였으며, 각 면마다 불상을 얕게 부조하였다. 부조되어 있는 불상의 수인(手印)은 선정인, 합장인, 지권인(智拳印), 설법인 등 다양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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