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57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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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釜山福泉洞古墳群出土-甲- |
영어의미역 | Armor with Scales Excavated from the Ancient Tomb Sites in Bokcheon-dong in Busan |
이칭/별칭 | 복천동 고분군 출토 찰갑,부산 복천동 고분군 출토 찰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로 66[복천동 50]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이현주 2 |
[정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의 부산 복천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삼국 시대의 비늘 갑옷.
[개설]
부산 복천동 고분군 출토 비늘 갑옷[釜山福泉洞古墳群出土札甲]은 1980~1997년에 실시된 부산 복천동 고분군[사적 제273호]에 대한 제1~5차 발굴 조사 때 발견되었다. 4~5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현재 부산대학교 박물관과 복천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부산 복천동 고분군 출토 비늘 갑옷은 모두 12령인데, 소찰(小札)[갑옷에 단 비늘 모양의 가죽 조각이나 쇳조각]을 연결하는 가죽이 남아 있지 않고, 소찰은 산란되어 원상태로 복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외에 허리 부분과 목 부분만 철제 소찰로 이루어지고 나머지는 가죽 혹은 유기질로 된 비늘 갑옷의 존재가 모두 4령이 확인되었다. 부산 복천동 고분군 출토 비늘 갑옷은 크게 4세기 대의 시원형 비늘 갑옷과 5세기 대의 전형적인 비늘 갑옷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시원형 비늘 갑옷은 이전의 유기질제 갑옷에서 철제화가 시작된 시점인 4세기 전엽부터 제작되었던 것으로 부산 복천동 고분군 38호 출토품이 가장 이른 예이며, 4세기 중엽의 64호에서도 출토되었다.
[형태]
부산 복천동 고분군 38호에서 출토된 비늘 갑옷에는 총 180여 개 이상의 소찰이 사용되었으며, 모두 5개의 유형으로 구분된다. 길이 8~12㎝, 폭 3.2~5.6㎝의 상원 하방형(上圓下方形) 소찰로 구성되었다. 특히 몸통 중위에는 허리 부위에 해당하는 방형 소찰이 있는데, 크기는 길이가 13~14㎝, 폭이 4.2~5.8㎝로 크고, 단면이 휘어져 인체의 곡률에 맞게 제작되었다. 출토된 소찰의 수량이 적은 것으로 보아 허리 부분보다 약간 내려오는 정도의 상반신 갑옷 정도라고 추정되며, 나머지 부속 갑은 존재하지 않는다. 외형적으로는 소찰이 크다는 점이 차이이긴 하지만, 구조적으로는 상·하단의 가동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설계되어 5세기 대로 비늘 갑옷 제작 기술 전통이 그대로 계승되었음을 알 수 있다.
5세기 대가 되면 비늘 갑옷 제작에 있어서 기술적 정형성이 완비되면서, 완성형의 철제 비늘 갑옷이 생산되기 시작한다. 부산 복천동 고분군에서 비늘 갑옷으로 가장 상태가 양호한 자료는 11호와 학소대(鶴巢臺) 1-3호 출토 비늘 갑옷을 들 수 있으며, 이외에도 34호, 35호, 47호 등에서 비늘 갑옷이 출토되었다. 대표적인 비늘 갑옷으로는 부속 갑이 완전히 갖추어진 채로 발견된 부산 복천동 고분군 11호 출토품이 있다. ‘S’ 자형으로 휘어진 허리 부분 요찰(腰札)을 가진 동환식의 몸통 갑옷인 동갑(胴甲)과 허리 아랫부분을 보호하는 상갑(裳甲), 어깨 부분을 덮는 상박갑(上膊甲), 다리를 보호하는 대퇴갑(大腿甲), 그리고 이외에도 목을 보호하는 경갑(頸甲), 팔을 보호하는 비갑(臂甲) 등이 존재한다.
소찰은 모두 여덟 종류가 있는데, 동갑을 구성하는 것은 2.5x9㎝ 크기의 상원 하방형으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며, 상갑은 그것보다 길고 장방형을 띤다. 상박갑은 상원 하방형으로 작은 소찰을 사용하는 등 부위에 따라 사용된 소찰 종류가 각각 다르게 적용되었다. 학소대 1-3호 출토 비늘 갑옷 역시 상원 하방형의 동갑찰과 단면 ‘S’ 자형 요찰, 장방형의 상갑찰로 구성되었고, 팔을 보호하기 위한 비갑은 종세 장방형 철판을 여러 매 이은 형태이다.
[특징]
부산 복천동 고분군 출토 비늘 갑옷의 특징은, 비늘 갑옷의 철제화가 처음 이루어진 4세기 전엽부터 5세기 후엽까지의 것이 모두 출토되어 삼국 시대 비늘 갑옷의 다양성을 한눈에 알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처음으로 철제화된 비늘 갑옷인 부산 복천동 고분군 38호 출토 비늘 갑옷은 판갑(板甲)과 투구가 함께 출토되었다는 점으로 보아, 부산 복천동 고분군 집단이 삼국 시대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는 비늘 갑옷 제작 기술이 가장 선진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5세기 대의 비늘 갑옷은 4세기 대의 비늘 갑옷 기술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보이며, 몸통 외에도 바지, 팔뚝 등 각종 부속 갑이 발달하게 되어 이를 조합한 완전한 비늘 갑옷을 이룬다. 5세기 후반이 될수록 비늘 갑옷을 구성하는 소찰 크기는 작아지면서도 수량이 많아지고, 부드러운 곡률, 가죽 결합 기술의 발달 등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의의와 평가]
1990년대까지의 갑주(甲胄) 연구는 5세기 전엽 고구려 남정의 영향에 의해 한반도 남부 지역에 철제 비늘 갑옷의 제작이 시작되었던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부산 복천동 고분군을 통해 4세기 대에도 이미 상하 유동성이 확보된 철제 비늘 갑옷이 제작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5세기 전엽이 되면서부터는 제작 기술적인 측면에서 상당한 발달이 이루어져 형식과 규격 등이 정형화되었고, 이는 나아가 대량 생산의 기반을 다지게 되는 계기가 된다. 결국 이러한 과정은 이후 일본의 고분 시대 괘갑(掛甲)[비늘 갑옷과 동일한 갑옷 종류]의 제작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