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0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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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國時代-戰爭 |
영어의미역 | Wars in the Three Kingdoms Period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백승옥 |
[정의]
삼국 시대 부산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정치 집단 상호 간의 무력 투쟁.
[문헌 자료에 나타난 삼국 시대 전쟁]
삼국 시대에는 수많은 전쟁이 있었다. 고구려·백제·신라·가야 각국들 간의 전쟁은 영역의 확장 또는 갈등의 해소를 위해 전쟁을 행하였다. 삼국 시대 부산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삼국 시대 부산 지역에서의 대표적 전쟁은 400년 고구려군 남정에 의한 당시 부산과 김해 지역에 걸쳐 존재하였던 금관가야[남가라]와 고구려·신라군과의 전쟁을 들 수 있다.
광개토왕릉비[광개토왕 영락 10]에 의하면, “경자년[400년]에 광개토왕은 보병과 기병 5만을 보내 신라를 구원하게 하였다. 남거성을 따라 신라성에 이르니 왜가 가득 차 있었다. 고구려군이 이르니 왜적은 도망갔다. 뒤를 쫓아 임나가라 종발성에 이르니 성이 곧 항복해 왔다[十年庚子 敎遣步騎五萬 往救新羅 從男居城 至新羅城 倭滿其中 官軍方至 倭賊退 □□背急追 至任那加羅從拔城 城卽歸服]”고 나와 있다. 고구려군은 신라에 들어와 있는 왜군을 토벌하기 위해 신라성[지금의 경주]에 이르자 왜적은 임나가라로 도망간다. 여기서 임나가라는 부산과 김해 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금관가야[남가라]이다. 임나가라를 고령의 대가야로 보는 설도 있지만 왜적이 내륙인 고령 지역으로 도망갈 리 없다.
임나가라 종발성이 지금의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부산의 배산 혹은 김해의 분산성일 가능성은 있다. ‘종발’은 ‘종지’, ‘사발’의 경상도 방언인데, 부산의 배산은 한자로 ‘杯[잔배, 그릇배]山’이며, 분산성도 盆[그릇분]山城이다. 이 당시 국제 정세는 고구려·신라를 한 축으로 하고 백제·가야·왜를 한 축으로 하여 서로 대립하는 형세였다. 비문에는 고구려가 일방적으로 정벌하는 형세로 기록하고 있지만 크고 작은 전투와 전쟁이 행해졌을 것이다.
[고고학 자료에 나타난 삼국 시대 전쟁]
부산 지역의 고고학적 양상을 통해서도 전쟁의 상황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부산 복천동 고분군과 연산동 고분군 등지에서 고리자루큰칼·철모·철촉·갑주 등 각종 무기·무구류들이 출토되었다. 특히 삼국 시대에는 이전과는 달리 기병(騎兵)과 장창(長槍) 등을 사용하는 기병 전술이 발달하였다. 고구려에 중장기병이 출현한 것은 4세기부터라고 생각하는데, 고대 부산 지역에서도 부산 복천동 고분군 38호와 69호에서 출토된 마구의 예로 보아 4세기 대에 이미 출현하였다. 4세기 후반 대가 되면 부산 복천동 고분군뿐만 아니라 김해 대성동 고분군과 김해 양동리 고분군 등 금관가야의 주요 지역으로 보급되었다.
중장기병의 모습은 고구려 고분 벽화를 통해 생생히 볼 수 있는데, 고구려군의 400년 남정 때에도 보병과 기병이 함께 왔음을 광개토왕릉비문에는 기록하고 있다. 5세기 중엽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부산 복천동 고분군 10호·11호에서는 실제 벽화에서 보이는 마주(馬冑)가 출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