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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의 전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059
한자 統一新羅時代-戰爭
영어의미역 Wars in the Unified Silla Period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권덕영

[정의]

통일 신라 시대 부산 지역에서 발생하거나 부산과 관련하여 일어난 각종 전쟁.

[개설]

삼국 성립 이후 한반도 패권을 둘러싸고 삼국 간에 치열한 전쟁이 지속되다가 7세기 중엽에 당(唐)과 연합한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켰다. 그 후 고구려와 백제의 옛 땅에 대한 영유권 문제로 당과 전쟁을 치렀으나, 676년(문무왕 16) 신라는 당을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명실상부한 삼국 통일을 이루었다.

[당 및 일본과의 전쟁]

676년 기벌포 해전에서 당이 겨냥한 목표는 황해를 건너 바닷길로 신라의 수도 경주로 직격하는 것이었다. 당의 계획이 성공하였다면 당의 해군은 남해안의 대중 교통로를 통하여 중간 기착지인 부산 지역을 거쳐 갔을 것이지만, 서해 기벌포에서 신라군에 패하여 신라 수도 침공은 좌절되었다. 731년(성덕왕 30) 일본 병선 300여 척이 신라의 동쪽 변경인 동남해안을 습격하였으나 이를 물리친 사실이 있다. 삼국 시대에도 일본 열도의 왜(倭)가 쓰시마[對馬]에서 수도 경주로 침입하였을 때 부산의 기장(機張) 지역을 거쳐 갔으며, 이때도 일본은 규슈[九州]의 후쿠오카[福岡]에서 쓰시마를 거쳐 울산만으로 침공하여 동남해안의 기장 지역을 거쳤을 것이다.

[신라 하대의 내전]

100여 년 동안 전쟁 없이 평온을 유지하던 통일 신라는 이른바 하대(下代)의 혼란기를 맞이하여 중앙의 통치력이 약화되고 지방에서 호족들이 발호(跋扈)하여 국내적으로 어수선해졌다. 그 결과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는데, 급기야 10세기에 들어와 궁예(弓裔)견훤(甄萱)이 각각 후고구려와 후백제를 세워 독립함으로써 후삼국 시대가 개막되었다.

부산 지역 역시 후삼국 시대에 접어들면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렸을 것이다. 부산 지역을 둘러싸고 일어난 전쟁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은 없지만, 920년대 후반에 고려와 후백제가 서로 뺏고 뺏기는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어 부산 지역도 전쟁터로 변하였다. 926년(태조 9) 후백제 견훤이 고려 태조 왕건(王建)에게 부산의 절영도 명마를 선물하였다는 사실 등을 감안해 보면, 견훤이 합천 대야성을 함락하고 이어 창원과 김해를 거쳐 부산 지역까지 세력을 뻗쳤음을 알 수 있다. 이어 견훤은 부산에서 수도 경주까지 진격하려 하였으나, 울산 호족 박윤웅(朴允雄)이 고려에 구원을 요청하여 이를 저지하였다.

[의의와 평가]

부산 지역은 일본의 침공을 막는 요해처(要害處)[지세가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였으며, 기장이란 의미는 국가의 기밀을 시행한다는 뜻이므로 신라 때에도 일본 열도의 왜에 대비하는 중요한 요충지였을 것이다. 또한 신라 말 고려 초에 부산 지역은 호족들 간의 전쟁 혹은 후삼국의 영토 확장 과정에서 전쟁에 휘말렸던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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