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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복천동 고분군 57호 출토 판갑옷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774
한자 釜山福泉洞古墳群-號出土板甲-
영어의미역 Plate Armor Excavated from the Ancient Tomb Site 57 in Bokcheon-dong in Busan
이칭/별칭 복천동 고분군 57호 묘 출토 판갑옷,부산 복천동 고분군 57호 출토 종장판 정결 판갑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로 66[복천동 50]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이현주 2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판갑옷
재질
크기 52.8㎝[높이]|32.4㎝[후동부 최대 폭]
출토|발굴 시기/일시 1989년연표보기 - 부산 복천동 고분군에 대한 제3차 발굴 조사 시 발견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1년 6월 9일연표보기 - 부산 복천동 고분군 사적 제273호로 지정
현 소장처 복천박물관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50지도보기
현 소장처 국립김해박물관 - 경상남도 김해시 구산동 232
원소재지 국립김해박물관 - 경상남도 김해시 구산동 232
출토|발견지 부산 복천동 고분군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50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부산 복천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삼국 시대의 철제 판갑옷.

[개설]

1989년 부산 복천동 고분군[사적 제273호]에 대한 제3차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는데, 부산 복천동 고분군 57호에서는 4세기 중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판갑옷이 출토되었다. 현재 복천박물관과 국립김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부산 복천동 고분군 57호 출토 판갑옷은 부산·김해·울산·경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 4세기 대의 한반도 동남부 지역에서 주로 출토되는 갑옷의 일종으로, 철판을 못으로 고정하여 만든 판갑옷이다. 주로 대형 고분에서 많은 무기류와 함께 출토되고 있어 매장된 주인공이 전사적 성격을 지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형태]

세로로 긴 철판을 못으로 연결하여 만든 철제 갑옷으로, 작은 비늘 같은 쇳조각을 가죽으로 엮어 만든 비늘 갑옷[찰갑(札甲)]과 대비하여 판갑(板甲)이라고 한다. 좌우 전동부(前胴部)[몸통 앞부분]는 몸통 부분 2매씩과 양 옆구리 부분 2매씩으로 구성되었고, 후동부(後胴部)[몸통 뒷부분]는 3매로 구성되었다. 몸통 뒷부분의 상부에는 뒷목 부분을 방어하기 위한 후경부(後頸部)[뒷목 가리개]가 반달 모양 철판에 에워싸였고, 좌우 양옆 목을 에워싼 반달 모양 측경판(側頸板)[옆 목 가리개]이 있어 착장자의 위세를 돋보이게 한다.

갑옷의 상단부 가장자리는 구멍을 촘촘하게 뚫고 가죽끈을 꿰매어 끝마무리하였고, 갑옷의 맨 밑단에는 가로로 긴 철판[도련판]을 대어 갑옷의 형태가 틀어지는 것을 방지하였다. 좌측과 우측 옆구리 부분에 2개의 개폐 장치를 두어 전동부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장치하였으며, 앞섶 부분은 가죽을 안팎으로 감싸 끝단을 마무리하였다. 한편 갑옷을 착장하고 전동부를 여미기 위한 고정용 구멍이 양 옆구리 쪽에 세로로 2개씩 나 있으며, 후동부에는 어깨에 걸치기 위한 멜빵용 구멍이 4개 있다. 크기는 높이가 52.8㎝, 후동부 최대 폭이 32.4㎝이다.

[특징]

4세기 대에 해당하는 종장판 철제 갑옷의 지판(地板)[관(棺)의 밑바닥 널] 구성과 비교하였을 때 부산 복천동 고분군 57호 출토 판갑옷의 가장 큰 특징은 양 옆구리에 해당하는 무판을 각각 2매로 짜고, 그것이 기능적으로 개폐 기능을 겸비하여 자유롭게 좌우 개폐가 가능하게 설계하였다는 점이다. 개폐 장치는 좌우 앞 몸체와 뒤 몸체 사이에 세로로 길게 가죽을 덧대고, 철판 외연을 따라 1㎝ 간격으로 뚫은 구멍을 통해 가죽으로 엮어 유동성을 확보하였다. 특히 동체부를 구성하는 철판은 짧게 재단되어 길이로 이어 붙인 부분이 다수 확인되고, 뒤 몸체는 작은 철판을 덧붙이는 등 수리의 흔적이 확인된다.

[의의와 평가]

부산 복천동 고분군 57호 출토 판갑옷은 4세기 대에 세로로 긴 판갑을 제작하는 데 있어서 지판의 배열을 후동판 3매로 구성한 점, 목 뒷부분의 연결 역시 세로로 긴 철판을 연결한 점, 섶판이 없는 점 등에서 비교적 이른 형식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지판의 재단이 처음부터 완전한 형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후동부와 무판의 일부를 자른 후 그 길이가 짧아 다시 덧붙인 점, 그리고 얇아진 부위를 철판을 덧붙여 수리하는 등 판갑 제작에 일정한 정형성이 없는 점으로 보아, 매장 의례에 사용하기 위하여 급하게 제작되어 나타난 양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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