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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688
한자 梵魚寺鷄鳴庵
영어의미역 Beomeosa Gyemyeongam Temple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나철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찰
창건자 의상 대사
전화 051-508-4345
중수|중창 시기/일시 1893년 3월연표보기 - 중창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02년 4월 - 개명선사 개설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27년 - 영산회상도 보덕굴 봉안
최초 건립지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546
현 소재지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546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 범어사 소속 암자.

[건립 경위 및 변천]

동쪽을 향하고 있는 계명봉(鷄鳴峰)에 자리한 범어사 계명암(梵魚寺鷄鳴庵)은 통일 신라 시대 의상 대사(義湘大師)가 이 부근에서 절터를 물색하던 중 한밤중에 닭 울음소리를 듣고 그 자리에 암자를 세우고 계명암이라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계명봉은 일본에서 바라보면 장군의 투구처럼 보이고 대마도에서 바라보면 닭의 형상이며 계명봉에서 대마도를 바라보면 지네의 형상이라 하여 일본인들이 침략 당시 암탉 바위를 없애 버렸다고 한다. 창건 기록과 중창, 중건에 대한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조선 후기 조성된 보살 좌상과 조왕도, 계명암 편액 등의 유물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이 끝난 후 중건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범어사 계명암범어사 산내 암자로 명맥을 유지해 오다 1893년 3월에 우화 장로(雨華長老)가 그의 제자 혼해(混海)와 금봉 노사(金鋒老師)와 함께 큰 원력을 세우고 옛 계명암 터에 다섯 칸 정사(精舍)를 기공하고 8개월 후에 낙성하여 탱화를 그려 넣은 뒤 봉안하였다. 이후 1902년 4월 계명암에서 승려 총섭(摠攝)을 비롯하여 17인이 모여 계명선사(鷄鳴禪社)를 개설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이후 계속해서 사세를 확장해 갔음을 알 수 있다.

[활동 사항]

1903년에 한국 근대 선풍의 선구자인 경허 대사(鏡虛大師)범어사 계명암에 와서 「범어사 계명암 창설 선사기(梵魚寺鷄鳴庵創設禪社記)」를 썼다는 내용이 남아 있는데, 이로써 계명암은 이 시기 선풍을 진작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1900년대 초부터 선원(禪院)의 개설과 함께 선풍의 진작과 불법을 전파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현황]

2011년 현재 승려 선재가 주지로 주석하고 있으며, 포교와 불법 전파에 힘쓰고 있다. 봉우리의 형상이 암탉과 수탉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여 ‘계명(鷄鳴)’이란 이름을 가지게 된 계명봉 중턱에 자리 잡은 계명암에 오르면 범어사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보덕굴[법당], 약사전, 요사채, 그리고 근래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삼층 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관련 문화재]

보살 좌상[보덕굴 봉안], 영산회상도[1927년, 보덕굴 봉안], 조왕도[공양간 봉안], 북극전 편액[범어사 성보박물관 소장] 등 주로 조선 후기에 조성된 문화재가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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