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55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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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三洞-公園六-二五戰爭期民間人虐殺 |
영어의미역 | Dongsam-dong Mini Park, the Site of Civilian Massacre in the Korean War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부산광역시 영도구 동삼동 산134-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기진 |
[정의]
1950년 6·25 전쟁 초기 부산광역시 영도구 동삼동에 민간인 시신 수백 구가 암매장된 사건.
[역사적 배경]
6·25 전쟁 초기 부산형무소에는 남로당 활동 등을 하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된 좌익 수감자와 국민보도연맹 회원, 제주 4·3 사건으로 형을 선고받은 수감자 등이 한꺼번에 수감되어 있었다. 형무소 내에서 처형이 이뤄지기도 하였지만, 수감자 중 일부는 병에 걸리거나 열악한 환경을 견디지 못해 숨지기도 하였다. 시신은 바다에 버려지거나 야산 등에 암매장되었다.
[경과]
1950년 9월 어느 날 심야에 트럭에 실려 온 시신 200~300구가 동삼동 미니 공원 일대에 암매장되었다. 동삼동의 지역 주민 서너 명이 이를 목격하였는데, 그들 중 일부는 시신을 직접 묻기도 하였다고 한다. 목격자들은 부산형무소에서 싣고 온 시신들로 추정된다고 증언하였다. 시신을 대충 묻어 외부로 신체의 일부가 드러나면 이를 주민들이 흙으로 덮어 주었다고 한다. 또한 시신 중에는 여성도 포함되어 있었고 옷이 완전히 벗겨진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다른 곳에서 처형된 뒤 이곳으로 옮겨졌는지, 아니면 부산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질병 등으로 숨진 시신인지 명확하지 않다. 수백 구의 시신이 한꺼번에 트럭에 실려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연사에 의한 시신으로 보기는 어렵다.
[결과]
1960년 4·19 혁명 직후 피학살자유족회가 결성되면서 전국적으로 유골 발굴이 이루어졌지만, 이곳은 그대로 방치되었다. 암매장 현장 위로 4차로 도로가 설치되어 유골 발굴을 통한 사실 확인이 힘든 상황이다. 암매장 사실을 잘 아는 지역 주민들이 지난 2000년경 현장에 위령비 건립을 추진하였으나, 관계 당국이 만류하여 주민들은 위령비 대신 솟대 2개를 세웠다.
[의의와 평가]
동삼동 미니 공원 6·25 전쟁기 민간인 학살 현장은 신평동 동매산 6·25 전쟁기 민간인 학살 현장과 더불어 부산형무소 집단 학살 사건의 진상을 잘 보여 주는 역사적 현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