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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보도연맹 경상남도연맹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190
한자 國民保導聯盟慶尙南道聯盟
영어의미역 Gyeongsangnam-do Federation of the Federation Protecting and Guiding the Public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기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회단체
설립자 대한민국 정부
설립 시기/일시 1949년 11월 20일연표보기 - 출범
해체 시기/일시 1950년 7월 26일 이후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50년 6월 25일 - 6·25 전쟁 발발
최초 설립지 광일초등학교 -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 4가 95지도보기

[정의]

1949년 11월 부산 지역에서 설립된 국민보도연맹 중앙본부 소속 연맹.

[설립 목적]

대한민국 정부는 남한 내 좌익 세력을 척결하기 위해 포섭 공작을 전개했는데 그 중심 기관이 국민보도연맹이었다. 국민보도연맹 서울중앙본부의 하부 조직인 국민보도연맹 경상남도연맹은 소작 쟁의 등 농민 운동이 활발했던 경상남도 지역에서 좌익 세력을 색출하는 역할을 맡았다.

[변천]

1949년 11월 20일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 광일초등학교에서 국민보도연맹원 800명을 포함해 2,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보도연맹 경상남도연맹 선포 대회가 열렸다. 국민보도연맹 경상남도연맹의 명예 이사장은 최철용 경남도경 국장, 이사장은 신영주 경남도경 사찰과장이 맡았고 경상남도 인민위원회 등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노백용(盧百容)이 간사장이 되었다. 또 강대홍(姜大洪)이 사무국장, 성낙명이 총무부장, 임순야가 보도부장, 권일초가 선전부장을 맡는 등 35명이 주요 직책을 맡았다. 국민보도연맹 경상남도연맹 산하에는 시·군별 조직이 있었다. 부산의 경우 부산북부경찰서 관할의 북부산지구, 부산경찰서 관할의 남부산지구, 부산수상경찰서 관할의 중영도지구 등 3개 지구로 나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국민보도연맹 경상남도연맹은 행동 강령에 “북한 괴뢰 집단에 절대 반대하고 공산주의 사상과 남북로당의 멸족 정책을 분쇄한다.”고 규정하였다. 국민보도연맹 경상남도연맹은 이에 따라 경상남도 지역 좌익 세력에 대한 포섭 공작을 전개하고 보도연맹 가입자를 매개로 은닉한 좌익 세력을 색출하는 작업에 적극 나섰다.

[현황]

1950년 6월 25일 6·25 전쟁이 터지고 전국적으로 국민보도연맹 학살이 전개되면서 국민보도연맹 경상남도연맹도 없어졌다. 1950년 7월 26일 국민보도연맹 북부산지구연맹이 장병과 경관들에게 위문품을 전달했다는 기록이 마지막이며, 공식적인 해체의 언급은 보이지 않는다. 6·25 전쟁 발발과 함께 자동 소멸됐다는 것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판단이다.

[의의와 평가]

국민보도연맹 경상남도연맹의 가입자 수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국민보도연맹 학살에서 경상남도가 최대 피해 지역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는 점에서 국민보도연맹 경상남도연맹에 대한 실체 규명은 학살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는 선결 과제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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