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54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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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面-機張縣- |
영어의미역 | Dong-myeon in Gijang-hy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장동표 |
[정의]
조선 시대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과 일광면에 있던 지방 행정 구역.
[제정 경위 및 목적]
동면(東面)은 조선 시대 기장현 산하 행정 구역의 하나로, 1413년(태종 13) 방위 면의 하나로 제정되었다. 지방 통치 체제의 정비를 통해 중앙 집권화가 추구되고, 면리제(面里制)를 통해 국가의 군현 하부 촌락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이후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동래부의 사회 경제적 사정에 따라 부분적으로 변천을 거듭하였다.
[관련 기록]
기장현 동면에 관한 대표적인 기록은 1789년(정조 13) 간행된 『호구 총수(戶口總數)』에 기장현의 읍·면을 “하서면, 중북면, 하북면, 읍내면, 동면, 남면, 상서면”으로 나누어 호구 수를 기록한 자료와 19세기 전반에 간행된 『기장현 읍지(機張縣邑誌)』의 방리(坊里)조에 “읍내면, 동면, 상서면, 남면, 하서면, 하미면”으로 편제한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변천]
1599년(선조 32) 임진왜란 후에 기장현이 폐지되면서 동면도 없어지고, 동면 지역은 울산군 하미면의 1동, 2동[일부]이 되었다. 1617년(광해군 9) 기장현이 복설되었으나, 동면은 복원되지 않고 여전히 울산군 소속으로 있었다. 1895년(고종 32) 5월 26일 을미개혁으로 기장군 동면이 다시 생겼다. 1914년 3월 1일 행정 구역 폐합으로 동면의 대부분은 동래군 일광면으로 바뀌고, 일부는 기장읍으로 편입되었다. 조선 시대의 동면은 지금의 기장군 기장읍과 기장군 일광면에 해당한다.
19세기 중엽의 동면은 신묘식[1831]과 을묘식[1855] 호구 조사를 수록한 19세기 간행 읍지 『기장현 읍지』에서 보면 만화리(萬花里), 고성리(古城里), 후동리(後洞里), 홍계리(洪界里), 취정리(鷲井里), 청광방(靑光坊), 이천리(伊川里) 등 7개 동리로 편제되어 있다. 만화리는 지금의 기장군 기장읍 만화리이다. 만화리는 1895년 5월 26일 을미개혁으로 기장군 동면 만화동이 되었고, 1914년 3월 1일 군·면 정비 때 동래군 기장면 만화리가 되었다. 동서 마을과 두화 마을이 있다.
고성리는 기장의 옛 성이 있던 곳으로 지금의 기장군 기장읍 교리이다. 고성리는 1895년 5월 26일 을미개혁으로 기장군 동면 교동이었다가 1914년 3월 1일 군·면 정비로 동래군 기장면 교리가 되었다. 홍문간 마을이 있다. 후동리는 지금의 기장군 일광면 삼성리이며 일광산 기슭에 후동 마을이 있다. 후동리는 1895년 5월 26일 을미개혁으로 기장군 동면 조전동이 되었고, 1914년 3월 1일 행정 구역 폐합으로 동래군 일광면 삼성리의 삼성 마을이 되었다. 홍계리는 지금의 기장군 일광면 횡계리이다. 홍계리는 1895년 기장군 동면 횡계동이었다가, 1914년 동래군 일광면 횡계리가 된다. 일광산 기슭 아래 넓은 골짜기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취정리는 지금의 기장군 일광면 용천리이다. 취정리는 1895년 5월 26일 을미개혁으로 기장군 동면 용천동이 되었고, 1914년 3월 1일 행정 구역 폐합으로 동래군 일광면 용천리가 되었다. 수릿골 취리의 각단 마을이 있다. 청광방은 지금의 기장군 일광면 청광리이다. 청광방은 1895년 5월 26일 을미개혁으로 기장군 동면 청광동이 되었고 1914년 3월 1일 행정 구역 폐합으로 동래군 일광면 청광리가 되었다. 이천리는 지금의 기장군 일광면 이천리이다. 이천리는 기장군 동면 이을포이었다가 기장현 동면 이천리라는 동리 명이 처음으로 공인되었다. 1895년 5월 26일 을미개혁으로 기장현 동면 이천동이 되었고, 1914년 3월 1일 행정 구역 폐합으로 동래군 일광면 이천리가 되었다.
[의의와 평가]
기장현 동면을 통해 조선 시대 부산 지역 지방 제도의 변천을 확인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