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54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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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萊- |
영어의미역 | Tug-of-war Game in Dongnae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놀이/놀이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
집필자 | 김승 |
[정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지역에서 음력 1월 15일 전후로 줄을 당겨 승부를 겨루는 민속놀이.
[개설]
동래 줄다리기는 정월 대보름부터 시작하여 평균 3일 동안 동래 시장 거리에서 동래 군민들이 동군(東軍)과 서군(西軍)으로 편을 나뉘어 줄을 마주 잡아당겨 승부를 겨루는 대동 놀이이다. 동래 줄다리기 행사는 1920년대 중반기까지는 주로 동래청년회에서 주관하였으며, 그 이후에는 동래청년회와 신간회 동래지회에서 주관하였다. 줄다리기의 경기는 주로 오후 2시에서 4시 사이에 시작하였다.
[연원]
신라 시대부터 시작된 놀이로 원래 단옷날에 거행하던 행사였으나 1890년 무렵부터 정월 대보름날 행사로 변경되었다. 1922년 정월 대보름 동래 줄다리기에 참가한 인원은 2만여 명이었다. 당시 부산의 인구가 6만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동래 줄다리기는 부산을 대표하는 민속놀이였음을 알 수 있다. 1936년을 전후로 일제에 의해 강제적으로 중단되기까지 동래 줄다리기는 전통 민속놀이로서 전승되었다.
[놀이 도구 및 장소]
정월 대보름을 앞두고 3일 전부터 새끼줄을 만들었다. 문헌 기록에 따르면 동래 줄은 암수 두 줄로 구성되며, 완성된 암수 각 줄은 도래[올가미 모양으로 틀어 만든 줄의 머리]에 기본 줄 33가닥을 함께 꼬아 만든 몸줄[본줄, 원줄] 한 줄과 종줄[곁줄, 젓줄] 두 줄로 이루어진다. 몸줄과 종줄에는 1m 간격으로 2~3m의 기본 줄을 달아서 줄꾼들이 잡아당기도록 되어 있다. 동래 줄다리기는 동래 시장 거리에서 거행하였는데, 비가 오는 경우에는 그 다음날 행사를 진행하였다.
[놀이 방법]
동군과 서군에는 각각 총사령관이 있어 이들의 기동(起動)과 정지(停止), 대기(大旗) 신호에 맞추어 군중이 규율 있게 움직이는 것 자체가 장관을 이루었다. 경기는 동래 청년회 악대의 시작을 알리는 연주가 있은 뒤 높은 대(臺)에 올라 있던 심판관의 신호에 따라 줄다리기가 진행되었다. 동군과 서군의 승부가 가려지지 않을 때는 하루를 쉬고 그 다음날 행사를 계속하였다. 우승한 군(軍)에게는 우승기가 수여되었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동래의 전통 민속놀이로 동래 주민뿐만 아니라 여타 지역의 구경꾼들도 많이 참가했기 때문에 행사 당일 동래에 모인 군중은 수만 명을 헤아렸다. 행사가 있는 날 동군과 서군을 응원하는 농악대(農樂隊)의 풍악은 물론이고 판정이 난 뒤에는 동군과 서군 구별 없이 농악대의 연주에 맞추어 모두가 함께 하는 대동 놀이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동래 줄다리기는 동래 지역민들만의 놀이가 아니라 부산을 대표하는 민속놀이로서 의의를 갖는다.
[현황]
동래 줄다리기는 해방 이후에도 간헐적으로 열렸으나 산업 시기를 거치면서 그 명맥이 단절되었다. 동래구에서는 동래 줄다리기를 국가 지정 무형 문화재로 지정받기 위하여 최근 엄정한 고증을 거쳐 2011년 10월 동래 온천장 허심청 앞에서 재현 행사를 가졌다. 이를 위하여 옛 동래 줄 제작에 참여했던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 고문인 문장원과 「동래 지신밟기」 기능 보유자인 김영수의 고증을 거쳐 전국에서 유일하게 세 가닥인 동래 줄다리기 줄의 제작 기법을 복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