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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409
한자 大同祭
영어의미역 Daedong-je Festival for Reconciliation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행사/행사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오재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행사시기/일시 개교 기념일
시작 시기/일시 1985년 5월 14일 - 효원 대동제 개막

[정의]

1980년대 부산 지역의 각 대학교에서 새롭게 시도된 대학 축제의 양식.

[개설]

대동제(大同祭)는 1980년대 중반 부산대학교를 중심으로 다함께 크게 어울려 화합한다는 뜻을 지니고 새로운 양식으로 시도된 대학 축제이다. 부산대학교에서는 매년 5월 15일 개교 기념일을 전후로 학교 축제를 열었다. 1984년까지만 해도 개최되는 축제는 일반적으로 개막 행사, 연주회 및 발표회, 전시회 중심으로 기타 학술제와 민속제가 열리는 등 대학가의 ‘낭만적인’ 행사였다. 그러나 1984년 이후 학원의 자율화와 민주화를 위한 학생 운동이 확산되면서 소비적이고 소모적인 행사 중심의 대학 축제를 건강하고 생산적인 성격으로 바꾸려는 여론이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대학 구성원의 화합과 단결을 이끌어 내고 사회 현실과 밀착한 대학 문화를 형성하고자 처음으로 대동제 형식의 대학 축제를 마련할 수 있었다.

[연원 및 개최 경위]

1984년 5월 29일 부산대학교의 민족지성연구회가 주최한 ‘효원 5월 민주제’는 대학 축제의 새로운 형태였다. 효원 5월 민주제에는 약 700명의 학생들이 참여해 광주 민중 항쟁, 을숙도 주민 생계 문제 등 사회 현실에 대한 고뇌가 담긴 노래와 시를 발표하고 마당극 놀이를 함께 하였다.

1985년 직접 선거를 통해 부활한 부산대학교 제17대 총학생회는 기존의 축포, 팝 페스티벌, 낭만의 축제를 거부한다고 밝히며 “오늘날 대학이 처한 시대적 상황에 대해 외면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어둠을 밝혀 나감이 대학인의 사명일 때, 더 이상 우리는 무국적(無國籍) 축제에 안주할 수 없다”는 반성과 함께 ‘효원 대동제’를 개막하였다. 이는 개교 기념 축제를 낭만적·향락적·소비적 축제가 아닌,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고민함으로써 효원인을 화합과 단결을 견인하고 대학과 사회의 ‘대동’을 이끌어 내는 장으로 만들자는 의미였다.

이를 위해 기획된 것이 ‘효원 민족 대동제’였고, 이를 통해 전통 문화와 대학 문화를 접합하고 공동체 의식을 기르는 장이 되고자 하였다. 그 결과 이전과 같은 연주 발표회 외에도 전통 문화와 사회 문제 심포지엄 등이 다채롭게 열렸으며, 대동제의 마지막 날에는 천여 명 이상이 동원되는 ‘영산 줄다리기’를 통해 ‘하나가 되는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대동제의 의미를 되살리고자 했다. 부산대학교에서 시작된 대동제의 성격과 양식은 이후 부산의 많은 대학에 확산되어, 이듬해부터 대동제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대학 축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행사 내용]

1985년 부산대학교 대동제의 놀이 진행 과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날은 ‘신명의 날’로서, 개막 길놀이, 대동제 장군 추대식, 개막 고사, 공연, 횃불제 등을 통하여 민족 통일과 민주 쟁취 그리고 민중 해방을 기원하였다. 둘째 날은 ‘기백의 날’로, 개교 기념식과 기념 마라톤 대회를 진행하였다. 셋째 날은 ‘서클의 날’로, 각종 심포지엄과 초청 강연회 그리고 촌극 경연 대회를 개최하였다. 넷째 날은 ‘진혼의 날’로, 5·18 민중 학살에 대한 진혼제와 추모식 그리고 굿을 벌였다. 마지막 날은 ‘대동의 날’로, 영산 줄다리기로 대동제를 실시하였다.

[현황]

1985년 이후 부산대학교를 비롯한 부산 지역의 대학가에서는 매년 대동제를 통해 시대의 고민과 지성인으로서의 사회 참여 문제를 학술 행사, 다양한 정치적 행사, 문화 행사를 통해 함께 모색하였다. 1990년대 이후 이념적 대립이 줄어들고 사회적 이슈가 다양해지는 한편, 절차적 민주주의가 확산되는 등의 사회적 변화에 따라 대학가의 축제 역시 탈정치적이고 다양하게 바뀌는 양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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