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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산의 순아도와 처녀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374
한자 菉山-順牙島-處女-
영어의미역 Lengend of Suna Island and Virgin Valley in Noksan
이칭/별칭 「순아도와 처녀골 전설」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집필자 김현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설화|전설
주요등장인물 순아|순아 아버지|왜군
모티프유형 지명 유래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92년 1월 3일 - 윤병태[남, 73]로부터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2년 2월 20일 - 『녹산 문화 유적 학술 조사 보고서』에 「순아도와 처녀골 전설」이라는 제목으로 수록
관련 지명 순아도 - 부산광역시 강서구 명지동지도보기
관련 지명 처녀골 -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지도보기
채록지 본동 마을 -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정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본동 마을에서 순아도·처녀골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녹산의 순아도와 처녀골」은 왜군에게 쫓기던 순아가 아버지를 구하려다가 함께 절벽으로 떨어져 죽은 골짜기[처녀골]와 순아가 살던 곳[순아도]에 대한 지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지명 유래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1992년 부산대학교 부설 한국문화연구소에서 발행한 『녹산 문화 유적 학술 조사 보고서』에 「순아도와 처녀골 전설」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는 1992년 1월 3일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본동 마을로 현지 조사를 나가 주민 윤병태[남, 73]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내용]

임진왜란 당시에 순아라는 예쁜 처녀가 있었다. 순아는 나이가 열여덟이었으며 혼사를 하기로 결정해 놓았는데, 어느 날 밤, 왜군이 마을에 들이닥치자 순아의 아버지는 순아를 데리고 강 건너 쪽으로 피신을 갔다. 그러던 중 왜군이 강을 건너고 있는 순아와 순아의 아버지를 발견하고는 헤엄을 쳐서 잡으러 왔다. 다급해진 순아 아버지는 순아를 데리고 가파른 골짜기로 올라갔다. 순아와 순아 아버지가 언덕배기에 올라서 보니 가파른 골짜기를 왜군이 바짝 뒤쫓아 올라오고 있었다. 순아 아버지는 왜군을 향해 근처에 있던 큰 돌덩이를 굴렸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돌은 큰 돌에 부딪쳐 왜군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언덕배기까지 올라온 왜군은 순아 아버지를 내려치려고 했다. 그때 순아가 왜군 손가락을 당겼다. 왜군은 그만 중심을 잃고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졌는데, 떨어지면서 순아 아버지를 붙잡아 순아 아버지까지 같이 떨어져 죽었다. 그리고 절벽으로 떨어지면서 왜군이 던진 칼에 맞아 순아도 죽었다. 순아와 결혼하기로 약속되어 있던 총각 집에서는 그러한 사연을 뒤늦게 듣고, 그 골짜기에 제단을 차려서 처녀의 영혼을 위로하는 제사를 올렸다. 그 후, 그 골짜기를 처녀골이라 하게 되었고, 순아가 살던 섬은 순아도라고 하게 되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녹산의 순아도와 처녀골」의 주요 모티프는 ‘지명 유래’이다. 이와 같이 지명의 기원과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는 전국적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다. 「녹산의 순아도와 처녀골」은 임진왜란 당시 억울하게 죽은 순아라는 처녀를 기리기 위해 순아도와 처녀골이라는 지명이 생겼음을 설명하고 있다. 「녹산의 순아도와 처녀골」을 통해 임진왜란 당시 녹산동은 왜군이 일본으로 가는 길목에 있었으며, 그로 인하여 왜군의 피해를 적잖이 입은 지역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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