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5182 |
---|---|
한자 | 龜浦義城傳說 |
영어의미역 | Gegend of Gupo Uiseong |
이칭/별칭 | 「의성 옛 성터」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 |
집필자 | 조정효 |
[정의]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에서 구포 의성(義城)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구포 의성 전설」은 황룡 장군과 500여 명의 군사들의 넋을 추모하는 뜻에서 의성이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성지(城地) 유래 전설이다. 구포 의성은 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6호로 지정된 일본식 석성(石城)으로 감동포성(甘同浦城), 감통성(甘筒城) 등이라고도 한다. 현재 남아 있는 성은 임진왜란 때에 왜적이 김해와 양산 사이에서 연락을 원활히 하기 위해 쌓은 것이라고 한다.
[채록/수집 상황]
1998년에 북구향토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부산 북구 향토지』에 「의성 옛 성터」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채록 장소와 채록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내용]
옛날 신라의 영토였던 구포 지역은 신라와 가야의 경계였는데, 왜구의 침략이 빈번히 이루어지던 지역이었다. 왜구들은 대체로 소규모로 강가의 마을들을 습격하여 노략질했지만, 때때로 대규모의 군사를 동원하여 이곳을 통해 내륙을 침범하기도 하였다. 한번은 왜구의 침략 규모가 너무 커서 신라는 고구려에 원병을 청하였다. 이때 성을 지키고 있던 군사는 500여 명이었고, 성주는 황룡 장군이었다. 황룡은 의로운 죽음을 남기라는 훈령을 내렸다. 약 500명의 군사는 도망가지 않고 싸움에 임했으며, 결국 모두 전멸하고 말았다. 이 성에서 시간을 지체해 버린 왜구의 대장은 고구려군이 오면 승리가 불가능할 것임을 깨닫고 바다를 건너 되돌아갔다고 한다. 이에 낙동강 유역의 주민들이 전쟁의 공포와 피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조정에서는 나라를 위하여 의로운 죽음을 택한 황룡 장군과 500여 명의 군사들의 넋을 추모하는 뜻으로 이 성을 의성이라고 명명(命名)했다.
[모티프 분석]
「구포 의성 전설」의 주요 모티프는 ‘의로운 죽음’이다. 「구포 의성 전설」은 황룡 장군과 500여 명의 의로운 죽음이 이야기의 기본 축을 이루고 있다. 전설이 역사성을 중시한다는 특성을 가진다고 할 때, 이 「구포 의성 전설」은 의성이 생겨나게 된 발생 목적에 충실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