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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인민위원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106
한자 慶尙南道人民委員會
영어의미역 People's Committee, Gyeongsangnam-do
분야 역사/근현대,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철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회단체
설립자 윤일
설립 시기/일시 1945년 10월 5일연표보기 - 조직
최초 설립지 부산 극장 - 부산광역시 중구 남포동 5가 18지도보기

[정의]

광복 직후 부산 지역에서 설립된 민간 자치 기구.

[개설]

1945년 9월 6일 조선인민공화국의 선포 이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이하 건준] 각 지역 지부 등 자치 조직의 인민위원회로의 전환이 광범하게 진행되었는데, 경상남도에서도 10월 5일 그 결성 대회가 부산에서 개최되어 경상남도 인민위원회가 탄생하였다.

[설립 목적]

경상남도 인민위원회는 조선인민공화국의 정강과 시정 방침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새로운 국가 건설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조직되었다.

[변천]

1945년 9월 6일 전국 인민 대표자 대회를 개최하여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조선인민공화국으로 해소되자,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경남지부는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자체의 조직을 강화하는 동시에 아래로부터 솟아오르는 대중의 욕구를 정치 운동에 나타내어 건전한 우리들의 새 조선을 건설”한다는 취지로 10월 5일 도내 각 부·군의 지부에서 선출된 대의원 242명과 본부 위원으로 구성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경상남도 대표자 대회를 부산 극장에서 개최하였다.

이날 대의원들은 경상남도 인민위원회 결성에 관한 안건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인민위원회로의 전환에 대해 반대하는 대의원들이 회의장을 이탈하여 따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경남연합’이라는 조직을 결성하는 사건도 있었지만, 결국 회의 결과에 따라 경상남도 인민위원회는 탄생하였다. 훗날 미군정은 인민위원회를 불법화하면서 우익 단체와 연합하여 해체시켰다.

경상남도 인민위원회는 부산, 동래, 울산, 양산, 김해, 밀양, 창원, 함안, 의령, 창녕, 마산, 진주, 하동, 산청, 함양, 거창, 합천, 사천, 고성, 남해, 통영, 거제도, 진영 등 경상남도 지역 각 부·군에서 면·리 단위까지 하부 조직을 결성하였다. 또 위원장, 각 부서장, 후보 위원, 고문 등의 조직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1945년 10월 5일 결성 대회에서 선출된 간부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위원장 윤일(尹一)[본명 윤택근(尹澤根)][거제], 부위원장 노백용(盧百容)[김해], 내정부장 강영순(姜鍈淳)[진영], 문교부장 오재일(吳載一)[동래]·차장 안병찬, 선전부장 박일형(朴日馨)[동래], 재정부장 김정규(金正奎)[통영]·이재봉(李在鳳), 노동부장 안균(安均)[의령], 보안부장 이병희(李炳熙)[산청], 관리부장 홍보용(洪甫容)[부산]·차장 신덕균(申德均), 산업부장 강병창(姜炳昌)[진주]·차장 김칠성(金七星).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경상남도 인민위원회는 결성 당일 아래의 결의문들을 채택하였다.

「인민위원회 결성에 관한 결의문」

본 대회를 조선인민공화국 경남도 인민위원회 대표자 대회로 전환하며 행정 기관으로서 활동에 가장 적합한 인민위원회로 조직함과 동시에 건준 경남본부를 발전적으로 해소하기로 다시 전도(全道) 내의 군·부 인민위원회의 결성을 촉진할 것임을 결의함.

「조선인민공화국지지 결의문」

우리는 조선인민공화국의 정강과 시정 방침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전 인민 대중을 그 산하에 결집하여 우리들의 완전한 독립을 전취할 것을 결의함.

결성 다음날인 10월 6일 오전 10시에는 제1회 도인민위원회를 전(前)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경남지부[구 초량경방단]에서 개최하였는데, 인민 위원 93명 중 77명이 참석하여 임시 집행 위원 5명을 선임하고, 의사 진행 상무위원 선거는 각 부군 대표 22명이 선출한 전형 위원에게 일임하기로 하였다. 이상의 활동을 볼 때, 경상남도 인민위원회는 조선인민공화국을 지지하고 경상남도 각 군·부에서의 인민위원회 결성을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일차적으로는 조직 정비와 행정·치안 유지가 주요 업무였다.

[의의와 평가]

해방 직후 경상남도 인민위원회는 다른 지역보다 강력한 조직력과 행정력을 지니고 있었다. 거제를 비롯한 일부 지역은 치안과 행정권을 가져 직접 통치하기도 하였다. 비록 미군정의 탄압으로 해체되었으나, 새로운 국가 건설을 위하여 노력하였고, 민중들의 지지도 받고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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